필자는 12첩 반상은커녕 3첩도 안 되는 소박한(?) 밥상을 차린 경우에 ‘젓수다’를 적극 활용한다. 그런 날엔 갓 지어 윤기가 나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기름진 밥을 올린다. 그러고는 경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젓수시옵소서!” 왕 대접을 받은 데다가 구수한 향을 풍기는 갓 지은 밥이 입맛을 당기니 반찬 투정을 할 리가 없다.
‘당기다’는 참 매력적인 말이다. 입맛이 돋우어진다는 뜻 외에도 여러 의미를 안고 있다. “방아쇠를 당겼다”, “아내가 누비이불을 당겨 덮으며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김원일, ‘노을’)”처럼 물건을 일정한 방향으로 가까이 오게 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정한 시간이나 기일을 앞으로 옮기거나 줄인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겨울로 잡았던 결혼을 가을로 당겼다”가 이 경우이다.
당기다는 또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린다는 뜻도 있다. “버스로 여행하는 것보다 기차로 여행하는 것이 더 마음에 당긴다”와 같이 활용된다. 저절로 끌리는 게 어디 마음뿐이겠는가. 호기심, 기분, 관심, 구미도 절로 생기는 것이니 ‘당기다’와 연결해 쓸 수 있다.
그런데 ‘당기다’ 자리에 ‘땡기다’를 쓰는 이가 있다. “오늘은 짬뽕이 땡기네.” 또 이맘때면 “가을이라 그런지 얼굴이 땡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땡기다’는 표준어가 아니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 짬뽕은 ‘당긴다’로, 얼굴은 ‘땅긴다’로 써야 맞다.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으로 신체 부위와 어울리는 말이다.
그렇다면 ‘댕기다’는 어떤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댕기다’는 불(火)과 관련 있다. 불이 옮아 붙는다는 의미로 “담배에 불을 댕기다”, “그의 초라한 모습이 내 호기심에 불을 댕겼다”처럼 활용하면 된다.
‘당기다’, ‘댕기다’, ‘땅기다’는 말의 형태와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겠지만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불과 관련 있을 때는 ‘댕기다’를, 신체 부위에는 ‘땅기다’를, 그 나머지는 전부 ‘당기다’를 쓰면 된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좋아하는 이와 함께 먹는 밥’이다. 아내가 요리를 못해 이혼할 거라는 지인의 말에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떠올랐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부부애를 담은 참으로 멋들어진 글귀이다. 밥은 사랑이요, 행복이다.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