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경제 통합에 관한 우려와 의구심은 여전하다. 독일이 1990년 통일 이후 20여 년간 3000조 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과거 흡수 통일 대세론과 달리 점진적 남북 경제 통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재정적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새 접근법이 부상하고 있다.
작년 12월 KDB산업은행이 펴낸 ‘성장회계 방식을 활용한 북한 경제 재건비용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36년까지 20년간 북한 개발비용으로 705조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연평균 기준으로 남한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35조3000억 원 규모다.
보고서의 핵심인 북한 경제 재건비용은 ‘남북한 경제 통합이 가능한 수준까지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축소할 수 있도록 북한 주민의 소득을 남한의 일정 수준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소요되는 경제적 투자비용’을 뜻한다. 협의의 통일 비용인 △위기관리 비용 △제도통합 비용 △경제적 투자비용 중 마지막 항목에 초점을 맞췄다.
산은은 2036년 북한의 1인당 실질 GDP를 남한의 30% 수준인 1만 달러로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한의 지역별 소득 격차 통계를 토대로 30%가 남북 경제적 통합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재건 기간에 북한 경제는 과거 1976~1995년 남한의 성장 추이와 비슷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특히 연구 방법론 측면에서도 기존 목표 소득이나 항목별 추정 방식과 다른 성장회계 방식을 활용해 통일 비용에 대한 접근법을 넓혔다. 과거 통일 비용 추정에 있어 항목별 추정방식을 활용한 국회예산정책처(2010) 연구 결과에선 20년간 2257조2000억 원을 예상했고, 목표 소득 방식의 금융위원회 연구(2014)에선 5000억 달러(7일 기준 약 565조2500억 원)를 제시했다.
시장 동향을 민첩하게 읽어내는 증권가에서도 통일 한국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반기 들어 삼성증권, 하나금융투자, 신한금융투자 등이 통일경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들의 관심사는 정치·거시경제 측면보다 남북 경협에 따른 현실적 수혜 가능성에 쏠려 있어 눈길을 끈다.
남북경협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는 긍정적인 편이다. 삼성증권은 6월 보고서에서 “과거 한반도 통일 비용을 산정할 때 통독식 흡수 통일을 전제로 한 경우가 많았다”며 “북한 경제 재건비용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북 경제 통합을 위한 사전단계인 북한 경제 재건에 드는 비용을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정부의 자금 조달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하나금융투자는 7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대북 금융지원도 북한의 정치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부 주도의 남북경협에서 벗어나 민간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되, 정부가 보장자 역할을 담당하는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