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한글날을 앞두고 특별히 상기하고 싶은 자료가 있다. 바로 ‘낙선재본 한글 고전소설’이다. 지금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모두 84종 2000여 책이 보관되어 있다.
낙선재(樂善齋)는 1847년 조선의 24대 임금으로 문화적인 감수성이 탁월했던 헌종(憲宗, 1827~1849)이 당시 후궁이었던 경빈(慶嬪) 김씨를 위하여 지은 집이다. 이 낙선재가 건축되기 전부터 조선 궁중에는 한글로 쓴 소설들이 다수 존재했는데 낙선재가 건축된 후로는 이들 소설을 다 낙선재에 보관했다.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필사를 더한 것들을 보관해 오던 것이 6·25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옮겨 수장되어 있는 것이다. 왕비를 비롯하여 궁에서 살던 여러 비빈(妃嬪)들이 읽기 위해 필사한 이들 소설 중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한문소설을 번역한 것도 있고, 순수하게 창작된 한글소설도 있다.
필자는 이들 소설의 내용은 잘 모른다. 그러나 서예가로서 이 책들을 대할 때면 언제라도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난다. 정갈하기 이를 데 없는 필획으로 쓴 글씨들을 보노라면 성스러움을 느낀다. 조선의 여인들이 오욕칠정(五慾七情:인간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본능적인 다섯 가지 욕구와 일곱 가지 감정)을 다 내려놓고 맹물처럼 담담함 마음으로 쓴 글씨이기 때문이다.
궁녀들은 궁 안에 갇혀 오로지 한 남자인 왕만을 위하고 왕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야 했다. 끓어오르는 욕구도, 치올라오는 감정도 다 삭이고 평생을 고개 숙인 채 살아야 했다. 그런 궁녀들 중에 글씨 솜씨가 있는 궁녀는 자신의 상전이 심심풀이로 읽을 이야기책을 정성을 다해 베끼는 일을 했다. 그것을 베끼면서 여인은 수도를 했다. 오욕칠정을 다 내려놓고 오직 붓 끝에 정신을 집중하여 맹물처럼 담담한 마음을 글씨로 써내며 수도했다. 그 성스러움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한글서예 ‘궁체’의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는 한글날이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