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 공직사회] 질긴 ‘학연 카르텔’… 기수 무시 ‘꿀 보직’은 후배에게

입력 2018-10-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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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국장급 이상 고위관료 36명 중 89%가 ‘스카이’... 핵심 보직 도맡으며 승승장구

4일 이투데이가 기획재정부 국장급 이상 고위관료 36명(행정안전예산심의관 공석)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 출신이 무려 19명(52.7%)으로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연세대가 11명(30.5%), 고려대가 2명으로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이른바 SKY)가 기재부 고위관료의 88.8%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성균관대, 건국대, 육군3사관학교, 국제대가 각 1명이었다.

기재부는 대한민국 경제 전반을 책임지는 핵심 부처다. 예산, 세제, 경제정책, 공공기관 등을 관리한다. 서울대 출신이 많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이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이너 서클’(인맥 중심의 내부 파벌)이 형성된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주요 보직을 번갈아가며 맡고 정책 입안과 시행을 둘러싼 파워게임을 벌이면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폐해를 낳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재부 내에서 “서울대 안 나온 사람들에겐 도저히 일을 맡기지 못하겠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삼성 출신인 이근면 전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최고 기업인 삼성 출신이지만 처장 시절에는 공무원들의 배타적인 문화 속에서 고전했다고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 혁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신설된 인사혁신처의 초대 처장으로 영입됐지만 1년 반 만에 물러났다. 정부 내 비주류였던 그는 저서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에서 주류·비주류의 근본적 차이는 “패거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비주류는 패거리가 없어 누군가에게 묻어가기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비주류가 살아남으려면 첫째, 탁월한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끊임없는 단련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둘째,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 허점이 있는 순간 뒤를 지켜 줄 아군이 없다. 셋째, 작은 공(功)에 만족해야 하고 큰 공을 탐하는 순간 주류의 집단적인 공격을 받는다.”

김동연 부총리는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지만 이른바 SKY 출신이 아니다. 지금은서경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국제대학교를 졸업했다. 김 부총리는 자신의 페북에 “우리 조직에 처음 오니 제가 나온 고등학교(덕수상고)나 대학교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이방인 또는 변방인 같다는 생각에 열등감마저 들었다. 저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사무관이었다. 그저 묵묵하게 일을 했다”고 적었다. 김 부총리는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서 비SKY 출신으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사연을 적었다. “내가 나온 대학을 이야기하면 ‘그런 대학도 있나요?’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총리의 저서에는 현재는 야당의 3선 국회의원인 A 의원도 기재부에서 비SKY 출신으로 고초를 겪었다는 사례가 나온다. A 의원이 처음 사무관 발령을 받아 기재부에 왔지만 일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서울대 출신들이 많다 보니 어느 과를 나왔느냐로 편을 가르기도 한다. 서울대 법대와 경제학과가 대표적이다. 법대 출신인 전 기재부 장관은 법대 동문회 자리에서 “10년 만에 돌아와 보니 서울대 법대가 손이 끊겨 안타깝다”며 “서울대 법대가 경제학과 나온 사람보다 더 일을 잘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일부 부처에서는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고등학교마저도 내편 네편을 나누는 기준이 됐다. 특히 기재부의 경우 과거 경기고 선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위기 속에서 다른 고등학교 출신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휘문고 출신으로 기재부 차관, 금융위원장을 지낸 신제윤 전 위원장은 과거 기재부 근무 시절에 “휘문고 출신으로는 처음 과장에 진급했다”며 “당시 장관이 경기고 출신만 먼저 승진시키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파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는 과거 얘기만은 아니다. 몇 해 전 기재부 인사에서는 한 고위관료가 자신이 나온 고등학교의 후배에게 기수를 무시하고 핵심 과장 자리를 밀어줘 다른 과장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학연과 함께 부처별로 주요 인맥들이 서로를 끌어주는 문화도 강하다. 이른바 파벌주의다. 관가에서 회자되는 주요 인맥을 보면 기재부는 옛 경제기획원을 일컫는 EPB와 옛 재무부를 지칭하는 모피아 인맥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 때는 모피아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는 계속해서 EPB 출신들이 득세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옛 상공부와 동력자원부 인맥으로 나뉜다. 이들이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을 양분하는 구조다. 외교부는 서울대 외교학과가 주요 보직을 나눠 갖고 있고 해양수산부는 옛 부산수산대인 부경대 인맥과 한국해양대, 목포해양대 인맥이 주류다. 교육부는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 국세청은 세무대 출신들이 주류로 좋은 보직을 독차지한다.

한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A 서기관은 “같은 대학이나 같은 과를 나온 후배들만 챙기는 선배들을 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며 “부처에서 인사를 할 때 어느 학교를 나왔냐가 회자되는 것부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부처의 B 서기관은 “이른바 SKY 대학을 나오지 않은 선배들을 보면 정말 심하다 할 정도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빽으로 안 되니 실력으로 이기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밑에서 같이 일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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