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어류 중 숭어만큼 이름이 다양한 생선도 드물다.
숭어, 가숭어, 보리숭어, 참숭어, 밀치, 모치, 동어 등 지역과 크기에 따라 수십 가지의 다른 이름이 있다.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여러 지역에서 잡히기도 했고, 여러 방법으로 식용했다는 뜻이다.
전라남도 서해안 지방에서는 보리가 익을 때인 5, 6월경에 잡힌 숭어를 보리숭어라 하며, 상급의 횟감으로 친다. 한편 강화도나 한강 하구에서는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고 하며 가을부터 겨울에 잡히는 숭어를 별미로 친다. 도대체 왜 이런 상반된 주장이 나타났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숭어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숭어라 이름하는 물고기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도 동해부터 남해와 서해에서 고루 잡힌다. 숭어는 겨울에 일본 남부나 동중국해의 먼 바다로 이동하여 산란을 하고 봄철에 우리나라 연안으로 접근하여 다음 산란철까지 머문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이 숭어를 보리숭어나 참숭어라 부른다.
가을부터 겨울철 한강 하구 등 큰 강의 하구 유역에서 많이 잡히는 숭어는 숭어가 아니라 기수역(汽水域)에 많이 서식하는 가숭어다. 가숭어는 봄철이 산란철로 영산강, 금강, 한강, 대동강 하구 지역에서 많이 잡힌다. 때문에 연안에서 잡히는 숭어 중 알이 들어 있는 것은 모두 가숭어다. 이 중 영산강 하구에서 산란 직전 잡은 가숭어 알로 만든 어란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경기지방에서는 가숭어를 참숭어라 부른다. 지역마다 자기 지역에서 많이 집히는 숭어에다 ‘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숭어와 가숭어를 어떻게 구별할까? 눈과 꼬리지느러미로 쉽게 판별이 가능하다. 숭어는 가숭어에 비해 눈이 크고 검다. 가숭어는 눈이 노랗다. 제비꼬리처럼 날렵하면 숭어고, 꼬리지느러미가 밋밋하면 가숭어다. 숭어와 가숭어, 둘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 봄철은 숭어가 맛있고, 가을철부터는 가숭어가 맛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춘향과 이도령의 첫날밤 음식 숭어찜
숭어는 요즘엔 회나 탕, 구이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여러 고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어류 중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먹었던 것이 바로 숭어다.
‘춘향전’에서 월매는 이몽룡과 춘향이가 백년가약을 맺던 그날 밤, 갈비찜과 제육찜과 숭어찜을 내놓았다. 이때 숭어찜은 숭어의 비늘을 친 다음, 내장을 빼고 돼지고기와 표고와 목이 등을 다져 소를 만들어 속을 채워 넣고 찐 음식으로 보인다.
1902년 고종 황제의 생일잔치에는 수많은 음식이 준비되었고, 그중에 숭어 어만두는 화려한 모양새를 뽐냈던 듯하다. 어만두에는 숭어, 계란, 표고, 석이, 목이, 고추, 돼지고기, 소고기, 녹말, 파, 마늘 등이 사용되었다. 숭어 살을 넓게 포를 떠서 만두껍질로 활용하고, 다른 재료들은 소로 사용한 것이다. 숭어 어만두는 삶아서 초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어만두탕으로도 먹었다. 어만두탕은 장국에 고명을 넣고 끓인 후, 먼저 숭어살을 잘게 썰어 넣고, 가장자리를 곱게 여민 어만두를 넣어 국을 끓인 다음, 달걀을 풀어 넣고 산초가루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숭어는 평양에서도 겨울철에 즐겨 먹었다고 한다. 대동강에 얼음이 얼면 구멍낚시로 숭어를 잡아, 숭어회에 “김장김치를 꼭 짜서 숭숭 썰어 곁들인 것을 갓 지어낸 밥을 일부러 차게 식혀 참기름을 치고 비벼 먹었다”(1978년 5월 1일자 경향신문)고 한다. 요즘 이북 음식 전문점에서 내놓는 김치말이 밥과 일식집 회덮밥의 중간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러 요리 방법이 있지만 가장 명성이 높은 것이 바로 숭어알을 가공한 수어란(水魚卵)이다. 민어알로 만든 어란을 숭어알로 만든 것이라 속여 팔기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수어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 수어란은 전남 영산강 하구 몽탄에서 집힌 숭어알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무슨 생선이든 회를 잘 쳐야 맛있는 법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추석 연휴를 맞아 숭어 맛을 보기 위해 강화도로 간다. 초지대교를 지나니 강화도가 자랑하는 또 다른 농산물인 속이 노란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넓은 고구마 밭 너머에는 벼가 가을 햇볕을 받아 황금빛으로 일렁인다. 강화도에서 숭어를 잡는 어부가 횟집을 운영하는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잘 알려진 곳이 선두 5리 어시장이다. 어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시장이라기보다는 정확하게는 올망졸망 조그만 횟집들이 모여 비슷한 메뉴를 내놓는 횟집촌이다. 횟집 앞에는 보통의 횟집이 그렇듯이 수족관이 있고, 수족관에서는 숭어, 농어, 전어 등 여러 어종들이 활발하게 헤엄치고 있다.
정오를 막 지났지만 횟집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추석 전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가족단위로 많이 찾은 모양이다. 메뉴에 있는 숭어가 ‘숭어’인지 ‘가숭어’인지 물어보니, 아직 ‘가숭어’는 잡히지 않는다며, 숭어도 맛있다고 한다. ‘가숭어’가 나올 철이 되었는데 숭어만 있다니, 어쩔 수 없이 숭어와 전어를 주문한다.
오랫동안 바다낚시를 다니면서, 여러 어종의 물고기를 잡아 직접 회를 쳐 먹었다. 우럭과 광어는 기본이고, 낚시꾼이 아니면 먹기 힘든 수많은 어종을 잡아 바다에서 회를 쳐 먹었다. 지인들은 그중에서 어떤 회가 가장 맛있었느냐고 자주 묻는다. 그 질문은 참 대답하기 힘들다. 이를테면 광어는 늦가을부터 겨울이 맛있다. 여름에는 참가자미, 돌돔, 농어, 재방어가 맛있다. 가을에는 삼치, 학꽁치, 고등어, 갈치, 전갱이, 방어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생선이 맛이 든다. 열기나 볼락은 겨울이 더 맛있다.
어종도 맛을 좌우하지만 그보다 더 맛을 결정짓는 것은 계절과 생선의 상태와 회 치는 기술이다. 아무리 고급어종이라도 횟집 수족관에서 오래 있으면 맛이 떨어진다. 민어와 같이 숙성한 선어가 더 맛이 있는 경우도 있고, 노래미와 같이 바로 잡아서 먹어야 더 맛있는 어종도 있다. 우럭의 경우로 설명하자면, 낚은 즉시 고기의 피를 빼고, 포를 떠서 냉장고에서 하루쯤 숙성시키면 가장 맛있다. 낚시 도중에 포를 뜰 수는 없으니, 얼음이 충분한 아이스박스에 잘 보관하는 것도 요령이다. 보관을 잘못하면 회는커녕 매운탕도 맛이 없다. 그러니 어떤 회가 맛있다고 대답하겠는가?
가을이 깊어갈수록 전어는 억세지고
바로 회가 나온다. 숭어는 그다지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깊어져서 강화도 일대에서 가숭어가 본격적으로 잡히기 시작하면 숭어도 맛있는 회로 변할 것이다. 대신 전어가 맛이 있다. 바로 8, 9월에는 전어가 자기 생애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살 속 깊은 곳까지 기름이 배 고소하고, 뼈는 덜 억세 먹기에 부담이 없다.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깻잎에 된장을 푹 찍은 회 서너 점을 싸서 입이 불룩하도록 먹어야 전어회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 집 나간 며느리를 해마다 불러대는 전어구이도 머리부터 꼬리까지 내장을 포함하여 통으로 먹을 수 있는 이때가 맛있다. 가을이 깊어 가면 전어는 뼈가 점점 억세져서 통으로 먹기 힘들기에 그 풍미가 떨어진다.
숭어와 전어를 배불리 먹고, 횟집을 나와 다른 횟집 수족관을 구경한다. 그런데 아뿔싸! 다른 횟집 수족관에서 눈이 노란 가숭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여기서 먹을 걸. 사실은 가숭어 맛을 먼저 보려고 강화도로 온 것이 아니던가? 이럴 때는 땅을 치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눈을 돌려 물 빠진 강화 갯벌을 바라본다. 서너 척의 고깃배들이 갯벌에 덩그러니 매여 있다. 갯벌 중간으로 선착장이 길게 이어져 있다. 가을볕을 이마에 이고, 선착장 끝까지 걸어간다. 한 낚시꾼이 물골에 미리 채비를 던져놓고 있다. 물이 들어오면 망둥이를 잡을 것이다. 딱 보니 망둥이 포인트로는 특급의 자리다. 그래, 여기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햇볕의 알갱이가 부서지는 날 다시 망둥이 잡으러 와야겠다. 그때 가을 가숭어 맛을 반드시 볼 것이다.
문학평론가·(사)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