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다. 중국의 보복 경고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2000억 달러(약 225조 원)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고율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주요 2개국(G2)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양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92.55포인트(0.35%) 하락한 2만6062.12에 거래를 마쳤다. S&P500지수는 16.18포인트(0.56%) 내린 2888.8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14.25포인트(1.43%) 떨어진 7895.79에 장을 마감했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반영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 이른바 공포지수는 1.54포인트 올라 6거래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날 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 부과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장 마감 후 대중 관세 관련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미국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다”며 “장 마감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8월 두 차례의 관세에 이어 이번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가 추가됨에 따라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의 절반 가량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미국 관세가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과 소비자 가격을 모두 올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규모 투자와 소비지출을 저하시켜 경제 전반에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날 증시가 빠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된 이후 정보기술(IT) 관련주와 소비재 관련주 등 광범위한 종목에 걸쳐 매도세가 유입되면서 지수 전체를 끌어내렸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7월 말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알페벳 자회사) 등 FAANG을 비롯해 메이시와 콜스 등 소매 관련주들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관건은 중국 측의 반격이다. 양국 간 고위급 무역협상을 조율하는 와중에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3차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은 고강도 보복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이달 말 개최로 조정 중이던 양국 간 고위급 협상을 백지화하는 것은 물론 대미용 수출제한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중국 재정부장은 지난 주말 한 포럼에서 “무역전쟁에서 필요하다면 중국은 미국 기업의 공급망에 결정적인 요소들을 수출하는 것을 중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어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대안을 찾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3~5년 간의 고통은 어떨까. 이것은 정치적 사이클을 건너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의 도발적인 관세폭탄 시리즈에도 포용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이제 그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중국도 방어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인 태도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8월 미국이 500억 달러 어치의 중국산 제품의 25%의 보복 관세를 매겼을 때 중국은 미국산 대두 등에 비슷한 규모의 관세를 매겨 맞대응했다. 이번에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5~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 양국에 공급망을 구축한 다른 나라 기업들에도 영향은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3차 관세 부과로 끝내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이 자신의 요구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및 하이테크 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을 중단할 때까지 무역전쟁을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나머지 중국산 제품에 대한 4차 관세 폭탄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자신의 요구에 동의한다면 무역전쟁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대신 트럼프 역시 자국민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번 3차 관세 폭탄이 치명적인 건 1, 2차 때와 달리 서민 생활에 밀접한 품목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전자 제품과 식품, 공구 및 가정용품을 포함한 일상용품 가격이 줄줄이 오를 수 있다. 앞서 미국 기업 대표들은 폭넓은 차원에서 추가 관세가 기업 실적과 고용, 성장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시점에서 무역 전쟁은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0.1%포인트 낮출 것이라며 중국이 보복하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