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가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국책연구원이 경제가 회복세라는 정부 입장과 반대의 결론을 낸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4일로 예정된 9월 ‘최근경제동향(그린북)’ 발표 때 경기 판단을 바꿀지 주목된다.
그린북은 매달 초 기재부가 발표하는 경기 진단 보고서다. 책 표지가 녹색이어서 그린북으로 불린다. 기재부는 지난달 그린북에서 “우리 경제가 회복세”라고 평가했다.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그린북에 줄곧 ‘회복세’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간에 이어 국책연구원인 KDI마저 11일 경제동향 9월호에서 지난달까지 유지했던 ‘경기 개선 추세’라는 문구를 삭제하면서 코너에 몰렸다.
KDI는 상반기만 해도 우리 경제가 성장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7월에 “전반적인 경기 개선 추세가 완만해지고 있다”, 8월엔 “내수 증가세가 약화돼 경기 개선 추세를 제약하고 있다”며 부정적 평가로 선회하더니 이달 보고서에선 ‘하락’전망을 분명히 했다.
KDI의 경기 전망이 바뀐 이유는 내수 부진 때문이다. KDI는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큰 폭의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소비 관련 지표가 다수 회복됐으나 내수의 개선을 견인하기엔 미약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 3분기에 걸쳐 경기 개선 속도가 느려지면서 경기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가 바로 급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방 위험이 상방보다는 높다”고 밝혔다.
KDI는 또 취업자 수 증가 폭이 7월에 8년 6개월 만에 최저인 5000명으로 급감한 것 관련해 “7월 고용지표의 급격한 위축은 경기 상황과 인구구조 변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밝혔다. 인구구조 변화 등이 원인이라는 정부 입장과 달리 최저임금 인상 등도 고용 악화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통계청도 조만간 경기 고점을 확정할 계획이다. 통계청은 각종 지표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경기 순환기 기준순환일’을 설정한다. 언제가 경기 저점이고, 고점인지를 판정해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2013년 3월 저점에서 시작한 ‘제11 순환기’에 속해 있다. 경기 순환기는 저점→고점→저점을 한 주기로 하는데 아직 제11 순환기의 정점은 확정되지 않았다. 경기정점이 확정되면 정부가 지금의 경기가 ‘정점’에서 ‘저점’으로 하락하는 수축 국면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셈이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앞서 2분기 현재 경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