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조롱하는 도발에 아우디가 발끈하면서 유치한 싸움이 불붙었다. 아우디는 곧바로 “세계 최우수 자동차로 선정된 걸 축하한다. 르망24 레이스에서 6회 연속 우승한 아우디로부터”라고 받아쳤다. BMW의 내구성을 비웃는 보복 공격이었다.
얼마 뒤 난데없이 일본차가 끼어들었다. 스바루는 “미인 대회에서 우승한 아우디와 BMW에 축하를 보낸다. 세계 최우수 엔진에 선정된 스바루로부터”라며 숟가락을 얹었다.
명차들의 다툼이라 하기엔 상황이 애매해질 즈음, 한 장의 사진이 상황을 종결시켰다. 근사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정장 차림의 노신사가 가소롭다는 미소를 띠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욕을 날린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벤틀리’라는 브랜드만 덩그러니 새겨 놓았을 뿐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날 이후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다. 소비자들은 벤틀리라는 이름 앞에 모두가 쭈글이가 된 일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몰라도 상관없다. 벤틀리니까.
스마트폰 시장의 세계 1위는 애매하다. ‘삼성이지’ 싶다가 화웨이인 듯도 하다. ‘애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확실한 현상은 남들이 엎치락뒤치락 엉키는 사이 애플이 저 멀리 달아난다는 것. 구체적인 이유는 모른다. 그냥 애플이니까.
애플은 잡스가 없으면 어려울 것 같았다. 여전히 혁신을 내세우지만 기술은 새롭지 않고, 성능은 놀랍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서비스는 갑질에 가까웠다. 혹평이 쏟아지고, 판매 감소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넘쳐났다. “애플은 끝났다”가 대세였다.
그런데 떠들썩한 말잔치 속에 ‘앱등이’ 혹은 ‘애플빠’들은 조용히 어디론가 모여들었다. 묵묵히 번호표를 받아든 뒤 긴 줄을 만들어 냈다.
진보한 기술, 뛰어난 성능은 더 앞선 기술과 더 나은 성능에 쫓기는 무한경쟁을 부른다. 하지만 애플은 기술로 경쟁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애플 본사 사람들은 경쟁자로 구글을 꼽았다. 구글폰이 아니라 “구글 자체가 가장 큰 위협”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기 때문”이란다.
추격자들은 ‘더 좋은 기계’를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아이폰은 ‘더 나은 삶’에 집중한다.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스포츠 용품 회사인 나이키에서도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그들은 아디다스 대신 닌텐도를 주시한다. 사람들이 게임기를 붙잡고 방구석에 틀어박히면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면 봐왔던 익숙한 풍경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새로운 아이폰이 공개되는 12일(현지시간), 이번에도 앱등이들이 좀비처럼 애플 스토어 앞에 모여들지 궁금하다.
트레일러는 예년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것이 없다”, “비싸다”, “안 팔릴 것”, “M자형 탈모폰”….
정작 아이폰 사용자들은 누가 뭐라 하든 별 관심이 없다. 왜 아이폰을 고집하는지 물어보면 이해 못할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편해서”, “예뻐서” 정도는 양반이고 “잘 모르겠다”도 상당수다. “스냅드래곤을 압도하는 AP(중앙처리장치)의 성능”, “안드로이드폰이 따라오지 못하는 최적화”처럼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기 힘든 이야기는 언론이나 전문가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경쟁자들에게는 당혹스러울지도 모를 이런 현상은 사실 사용자의 대답 안에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앱등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기계가 아니다. 새 아이폰이 가져다 줄 라이프 스타일의 진화다. 실제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앱등이는 그리 믿는다. 아이폰이 기계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비결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