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엔진이 주류를 이뤘던 국산 SUV에도 판세 변화가 일고 있다. 불과 5년 전만해도 전체 SUV 판매의 95%가 넘었던 디젤 비율이 올들어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SUV의 소형화와 친환경 내연기관의 등장, 가솔린 엔진 기술의 발달, 디젤에 대한 환경규제 강화 등이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9일 관련업계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완성차 5개사가 판매 한 전체 SUV 29만194대 가운데 디젤은 20만5598대에 그쳤다. 비율로 따지면 70.8% 수준. 여전히 디젤 인기가 높지만 역대 점유율과 비교하면 최저치다.
5년 전인 2013년 기준 전체 SUV 판매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95.7%에 달했다.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을 앞세운 수입 SUV와 달리 국산 SUV는 디젤 엔진을 선호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인기가 줄어들면서 지난해 75.8%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7월까지 70%를 겨우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SUV 파워트레인의 변화는 △경유 단가 상승 △가솔린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의 발달 △SUV의 소형화 및 다양화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인한 디젤 엔진 원가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디젤 엔진에 사용하는 경유는 휘발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료 단가가 낮다. 여기에 낮은 배기량으로도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 덩치 큰 SUV 시장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반면 디젤 엔진은 인기는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먼저 같은 배기량을 기준, 디젤 모델이 가솔린 모델보다 차 값이 비싸다.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갖가지 장비가 더해지면서 판매 원가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완성차 메이커에서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편의장비를 줄였지만 여전히 가격은 가솔린 모델보다 비싸다.
편의장비가 부족하면서 값은 오히려 비싼 디젤차는 뛰어난 연비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지켜왔다. 반면 최근 하이브리드를 비롯한 친환경 엔진이 디젤에 버금가는 놀라운 연비를 앞세워 속속 SUV 시장에 파고들었다. 기아차 소형 SUV 니로는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등 세 가지 라인업을 갖췄고 현대차는 코나 EV와 수소전기차 넥쏘 등을 출시하며 친환경 SUV 라인업을 강화했다.
나아가 준중형과 소형차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소형 SUV가 인기를 끌면서 가솔린과 가솔린 하이브리드 SUV가 속속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소형 SUV 차급의 모델별 디젤 비중(올해 1∼7월)은 코나 21.5%, 트랙스 20.7%, 티볼리 27.4%에 그쳤다.
준중형 SUV의 경우 최근 5년간 디젤 모델 점유율이 투싼은 98.7%에서 90.9%로, 스포티지는 98.9%에서 88.7%로 각각 줄었다. 르노삼성 QM6는 가솔린 모델 출시와 함께 최근 3년간 디젤 비중이 100%→77.6%→30.1%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휘발유 및 휘발유 하이브리드를 바탕으로한 SUV는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현대차 코나와 기아차 스토닉, 쌍용차 티볼리 등이 경쟁하고 있는 소형 SUV 시장은 향후 1000cc급 경차를 바탕으로한 경형 SUV로 확대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 탓에 디젤 SUV의 가격도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예컨대 9월부터 새로 적용된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WLTP)를 맞추기 위해 국산 SUV는 일찌감치 새로운 장비를 추가해 값을 올렸다. 이전에 없던 ‘요소수(SCR) 시스템’을 추가했는데 디젤차 배기 계통에 요소수를 주입해 화학반응을 유도하고 이 반응으로 질소산화물을 걸러내는 기술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디젤 엔진에 대한 배기가스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새로운 장비가 더 필요하게 됐고, 이는 곧 차 가격을 인상하는 요인이 됐다”며 “전체 연료비에서 디젤과 큰 차이가 없는데다 정숙성과 친환경적 측면에서 유리한 휘발유 하이브리드가 당분간 SUV 시장에서 인기를 계속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