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정부가 참 딱해 보인다. 논란이 되고 있는 주택 문제 해결책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워낙 많은 대책을 내놓아서 그런지 이제는 뭐가 문제인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임대주택 관련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세금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좀 더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임대 사업을 하기 위해 자꾸 집을 사들이는 바람에 집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시각인데 반해 기재부는 꼭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인 듯하다.
여기다가 이해찬 여당 대표는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자 정부도 이에 찬동하는 눈치다. 조만간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래야 서울 주택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왜 진작 그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미 병세가 깊을 대로 깊어 백약이 무효인데 이제 와서 명약을 꺼내든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병세가 더 악화만 안 돼도 다행이겠으나 기자가 보기에는 명약은커녕 오히려 부작용만 낳는 독약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왜냐하면 정부와 여당이 강하게 언급하고 있는 대책이 시장 흐름의 본질을 벗어난 내용이라서 그렇다. 먼저 공급 확대 방안부터 따져보자. 이는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약으로 내놓은 내용이다.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임대주택을 비롯한 공공주택 2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연간 6만 가구에 달하는 물량이다. 위치가 좋은 철도부지와 역세권이 주요 건설 지역이다. 여기다가 민간 아파트 공급분 등을 포함하면 주택이 남아돌지 않을까 싶다. 평상시 서울의 전체 주택 공급 물량은 6만~8만 가구 수준이다. 민간 부문을 제외한 박 시장 공약 숫자만 해도 얼추 그 정도 된다. 아마 공공주택이 다 완성되면 기존 헌 다세대주택 등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다들 임대료가 싼 새 공공주택에 입주하려고 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헌집 가격은 추락할 게 뻔하다. 집값과 임대료가 떨어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은 국가 경제에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집값이 폭락하고 거래 절벽 사태가 벌어지면 가뜩이나 성장 동력이 약한 우리 경제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택이 없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주택 소유자의 형편은 나빠질 것이란 소리다. 특히 헌 다세대·빌라 등의 소유자는 요즘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짝 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이런 마당에 정부는 수도권 공급 물량을 30만 가구로 늘리겠다고 한다.
주택 공급을 위해 이곳저곳 개발하면 가격은 다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 땅 보상금이 시중에 나돌고 개발에 따른 부동산 값 상승으로 주택시장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시장은 안정된다. 분당·일산 신도시는 물론 잠실 재건축 아파트 완공 때 경험한 일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나면 떨어졌던 가격은 다시 반등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만약 물량을 계속 쏟아내면 가격은 자꾸 떨어질 것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에는 그럴만한 땅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할 경우 주택이 남아돌아 도시는 금방 쇠퇴한다. 경제 볼륨에 따라 주택 가격도 적당히 올라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자꾸 공급 부족 탓만 한다. 지난해 서울에서 인·허가된 물량은 다가구주택의 개별 세대를 포함해 11만 7500가구였고 이중 아파트는 7만 5000 가구쯤 된다. 2016년도에도 총 공급량은 8만 가구에 아파트는 2만 5200여 가구였고 2015년은 10만 5300여 가구에 아파트 4만 1400가구다. 3년간 연평균 총 주택 공급 수는 10만여 가구로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6년부터 3년간 연평균 물량 5만 1000여 가구의 두 배 규모다. 아파트도 최근 3년간 연평균 4만 7000여 가구로 10년 전 3만 4000여 가구보다 38.4% 많다. 그때보다 가구 수가 많이 증가했다 해도 요즘의 공급 물량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인·허가된 아파트는 2020년까지 속속 입주를 맞게 된다. 특히 약 1만 가구에 달하는 송파 헬리오 시티가 올 연말 완공되면 주변 주택시장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실수요만 따져서 수급 균형은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이는 최근의 주택 가격 급등세는 꼭 공급 부족으로 인해 벌어진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여윳돈들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임대사업용 주택시장으로 흘러든 탓이다.
수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도 매수 수요가 조금만 가세하면 가격은 확 오르게 돼 있다.
결국 시장 안정을 위한 묘책은 가수요 차단이 급선무다. 종부세 올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올리면 연간 수천만 원씩 물리면 몰라도 세율 조금 인상하는 것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차라리 2년으로 돼 있는 임대차보호법의 임대 의무기간을 3년 이상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 상한제를 도입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여기다가 임대료에 대한 세금을 철저히 징수하면 주택의 투자 수익률이 대폭 떨어져 구매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국토부 김 장관이 뒤늦게나마 임대주택 장려책의 허점을 간파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불쑥 끄집어내는 바람에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가수요 차단 방안을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