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끝자락. 서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요란한 빗줄기를 보며 손해보험사 직원은 어두운 낯빛으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비가 와서 자동차 사고가 늘면, 손해율이 또 오를 거란 걱정 때문이었다. 점심 식사 내내 대화에 집중 못 하고, 창밖을 보던 그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최근 손보사들은 손해율 때문에 비상이다. 폭염에 태풍까지 숨돌릴 틈이 없다. 손해율이란 '고객에게 준 돈/보험사가 번 돈'의 비율을 말한다. 이 수치가 오를수록 보험사 실적이 악화된다. 사업비용 등을 고려해 따져 본 적정수준은 77~78%다.
그런데 올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에 손보사 손해율이 87%를 넘겼다. 한화손보의 7월 손해율은 90%를 넘겼고, 현대(88.9%), KB(87.8%), 삼성(86.8%), DB(85.4%), 메리츠(84.5%) 등도 고전했다.
"사업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하게 지급된 보험금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정비업체 공임 상승(2만5100원→2만9994원) 등을 반영해 '최소 4% 이상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손보업계 하소연에 금융당국이 전한 답변이다. 보험료 건드리지 말고 알아서 살아남으란 얘기다.
물론 당국의 말이 맞다. 자동차 보험은 모든 운전자가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가격은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데 이때, 보험료 인상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태도다. 모든 손실을 손보사에만 떠넘기고 있다. 대형 자동차부품회사들은 정비업체들에 가벼운 접촉사고에도 '순정 신품을 쓰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수입차들의 중요 부품은 직영 딜러를 통해서만 유통되고 있다.
대체부품(순정품 대비 40% 가까이 쌈) 활성화를 위해 보험사들이 관련 특약을 만들어놨지만,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이를 디자인 특허로 묶어버렸다. 손해율을 낮추려는 노력이 이(異) 업종 벽에 가로막히고 있다는 얘기다. 보험사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문짝 스크래치 수리 등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을 중단할 경우 민원이 늘어날 수 있다. 소비자 보호를 제1 기치로 내세운 금융당국 앞에서 보험사가 '알아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970년대, 미국 보험사들이 일제히 보험 판매를 포기했다. 손해율 때문이었다. 백악관이 곧바로 TFT를 구성해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국민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자동차보험 탓에 올해 상반기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입은 손보사들이 실적회복을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