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광복 73주년 기념 국민대토론회’에서 “건국 정신이 어디서 오든 1948년에 주권과 영토가 모두 갖춰졌다는 측면에서 1948년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에 출연해 “김대중·노무현정부도 1948년 건국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며 “저는 기본적으로 전체 다수의 의견은 1948년이라고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 구체적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바로 전날까지도 건국일 논쟁에 대한 심재철 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가 1919년을 건국일이라 하든 1948년을 건국일이라 하든 뜨겁게 논쟁해볼 일”이라며 “개인적으로 역사해석을 획일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한 바 있다.
이날 ”건국절은 1948년“이라는 김 위원장의 언급은 최근 ‘친노(親盧) 우파’로 불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당내 일각의 불만을 불식시키는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이후 김 위원장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거나 ”박정희식 국가 개입에 동의하는 사람은 같이 갈 수 없다”고 언급해 ‘좌클릭’ 논란을 빚었다. 이 같은 잡음은 ‘가치정립’과 ‘정책행보’를 선언한 김 위원장의 추진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시기상 건국절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 ‘정면돌파’를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대위가 혁신 행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건국절을 특정한 데 따른 대외적 논란을 감수하더라도 우선 당내 비판을 잠재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당 내에서 ‘1948년 건국’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드는 배경에는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 대한 내부 견제심리가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날 발언에도 여전히 김 위원장을 둘러싼 잡음이 단번에 해소되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한 언론 칼럼을 통해 “한국당은 집권당 시절 국민의 역사관까지 국가권력으로 통제하려 했다”며 “1948년 건국 등이 옳다고 믿으면 이를 논리로 다툴 일이지, 국정교과서로 이를 강제할 일이더냐”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일부 당원들에게는 ‘건국절 발언의 진정성’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는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당 외부에서도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 아니냐’ 논란을 마주하게 될 전망이다. 현행 헌법은 우리나라의 출발점을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1948년 건국’ 주장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혀 있으며, 이는 1948년 공포된 제헌헌법도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