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복중(伏中)에 이삿짐 꾸리며

입력 2018-08-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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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복중에 이사를 했다. 이사 날짜 잡기 전 여러 집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다 보니,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꼭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집 사정을 봐주느라 그리되었다. 서울의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겼던 날, 땀범벅이 되어 이삿짐을 날라주던 직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미안하고 또 많이 고맙다.

요즘은 ‘포장이사’란 걸 하기에 할 일이 많지 않으려니 했는데, 자칫하면 쓰레기더미들이 이삿짐에 묻어 갈 판이라 짐 정리하는 데 제법 쏠쏠한 시간이 걸렸다. 꽤 오래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오가는 낡은 아파트를 떠나 비교적 신식 아파트로 옮기는 데다, 평수를 10평이나 줄여서 가자니 짐 덜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시절부터 안고 다니던 이불 짐을 정리한 후에, 오래도록 옷장에 걸어두었던 유행 지난 옷들, 이젠 몸이 불어 입지 못하는 옷들을 차곡차곡 모아 아파트 지하에 있는 재활용 수거함에 한가득 넣었다. 현관 신발장을 가득 채웠던 운동화, 구두, 슬리퍼, 샌들도 두어 박스 챙겨 재활용 수거함 신세를 졌다. 언젠가는 필요하려니 쟁여두었던 책장 속의 복사물, 낡은 잡지, 유학 시절 노트, 독서카드에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을 모두 모아 끈으로 묶어 종이 수거함에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막상 새 아파트에 들어가 보니 우리네 살림살이 방식에도 참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30년 이상을 한 아파트에 살았으니 신기하고 낯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테지만, 가장 눈부신 변화는 부엌의 위상이 주방으로 격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구식 아파트에선 거실이나 식탁과 분리된 채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 자리에 부엌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신식 아파트엔 정중앙 거실을 바라보는 곳에 당당히 주방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신 예전 부엌은 그런대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던 데 반해 요즘 주방은 냉장고에 식기세척기까지 내장(요즘 표현으로 ‘빌트 인’)되어 있음에도 면적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기야 예전엔 친지들 왕래가 빈번했던 데다 집에서 손님을 대접하고 명절도 쇠고 제사도 지내느라 부엌 쓸 일이 잦았건만, 요즘은 외식에 주문식이 대세인 마당에 누가 큰 부엌을 원하겠는가.

새 아파트 곳곳엔 수납공간이 알뜰하게 구비되어 있어 잡동사니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져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정작 창고로 쓸 만한 공간이 사라져버렸음은 내심 당혹스러웠다. 구식 살림에는 배추 절일 때 쓰는 큰 양푼이나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쓰는 떡시루처럼,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쓸 일이 있기에 ‘없으면 아쉬운 것들’이 있게 마련. 한데 새 아파트엔 이런 덩치 큰 살림들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이젠 박물관에나 보내버리라는 가족들 충고 겸 놀림에 눈물을 머금고 또 버렸다.

그러고 보니 여행가방을 풀어 놓을 때면 ‘불필요한 것들을 가득 들고 갔었구나’ 후회막급이었는데, 이삿짐을 풀려니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잔뜩 이고 살아왔구나’ 싶어 마음이 착잡하다. 10년 전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경리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했었는데, 버리고 갈 것이 어디 살림살이뿐이겠는가. 여기 숨어 있는 욕심, 저기 남아 있는 집착,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미련…. 부지런히 버리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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