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확고한 중국 봉쇄 전략에 시진핑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처지에 놓인 셈이다. 사실 이런 난국에 빠진 데에는 시 주석의 책임이 크다.
중국 전·현직 수뇌부들이 비밀리에 여름마다 여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의 올해 주제는 시 주석의 정책 노선 수정 여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中國夢)’과 첨단 제조업으로의 도약인 ‘중국제조 2025’ 전략 등 시 주석의 정책이 미국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무역전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어려운 경제 상황과 당국의 강압적인 통제에 주민의 거부감이 심해지자 정부가 시진핑 개인 숭배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은 EU와 연계해 무역전쟁의 격랑을 넘으려 했지만, EU는 “불공정한 무역 관습과 기술 약탈 등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주장 자체는 옳다”며 이를 냉랭하게 거절했다. 일대일로에 대한 각국의 불만과 견제도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평가다. 중국이 자국의 패권 확장을 위해 일대일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중국이 이런 난관을 넘으려면 시진핑이 전 세계에 자신의 진정한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미국제일주의를 부르짖고 보호무역으로 빗장을 채우려는 지금, 시 주석이 반대로 대국(大國)다운 포용력을 보여주면 둘의 모습이 더욱 대비돼 세계 각국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반감이 완화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중국이 최근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발 무역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승인을 지연해 지난달 말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업체 NXP 인수를 무산시켰다.
지난달 초 미국의 340억 달러 관세에 같은 규모의 보복관세로 맞받아친 것은 지난해 1월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시진핑 주석의 발언과 대치되는 것이다.
차라리 중국이 보복관세도 부과하지 않고, 퀄컴 인수도 승인했다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는 중국의 아량을 과시해 다른 국가들의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또 트럼프의 표밭인 미국 농민도 중국에 찬사를 보내며 든든한 우군(友軍)이 됐을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도 지금처럼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자 시 주석은 협약을 지지한다며 자신을 부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데이비드 샌들로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17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이는 전 세계 배출량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것이다. 중국이 이 분야에서도 투명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면 화석연료를 장려하는 트럼프와 대비되어 국제사회에서 더 큰 발언권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