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계획 중인 1000억 달러(약 111조8000억 원) 규모의 감세안이 가장 부유한 소수에게만 압도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와튼스쿨이 올 초 분석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감세안으로 향후 10년간 1000억 달러의 세수가 덜 걷힐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 돈의 95%가 상위 5%에게 흘러들어가고, 나머지 5%를 95%의 대다수 국민이 나누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위 1% 부유층이 약 90%의 이득을 독식한다. 1000억 달러 가운데 63%를 연 소득 상위 0.1%가, 23%를 바로 그 아래 상위 0.9%의 부유층이 차지한다.
새 감세안은 자본이득세액을 결정할 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는 방식을 포함한다. 자본소득세는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매각해 얻는 이익에 대한 세금으로, 고소득층의 납부 비중이 큰 세금이다. 미국 현행법상 자본소득세는 매수금액과 매도금액의 차액에 대한 세금이다. 개편되는 감세안은 여기에서 자산의 초기 가치를 매도할 때 물가에 맞춰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2000년에 10만 달러를 주고 산 부동산이 현재 100만 달러의 가치를 갖는다면 90만 달러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지만, 물가상승분을 고려하면 매수 당시 가치를 현재에 비춰 30만 달러로 상향 판단하고 70만 달러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감세안을 지지하는 측은 부유층의 자산 매각을 유도해 궁극적으로 저소득층 미국인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는 투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P는 이미 ‘슈퍼리치’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계소득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국가 세전 이익에서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30년간 두 배 증가했지만 50%의 비율은 절반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흐름이라면 수년 내 국가 세전 이익에서 0.1%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흐름은 단발적이거나 급작스럽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미 정책당국자들은 소득세와 양도소득세, 부동산세 감면 등의 세금 개편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겨 왔다. 지난해 말에도 미 정부는 의회 의결을 거쳐 법인세와 개인소득세를 인하해 향후 10년간 1조5000억 달러를 감세하는 세제 개편을 단행했다. 반년 만에 새로운 감세안을 꺼내든 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인기몰이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감세 개편안을 의회와 상의 없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재무부가 독자적으로 시행할 권한이 있는지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면서도 “입법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재무부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할 것”이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를 내부적으로 살펴보고 있고 경제적 비용과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