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사리 하나 추가요!

입력 2018-07-26 10:34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복더위로 찌든 날씨에/맑은 계곡을 찾아가서/옷 벗어 나무에 걸고/노래를 부르며/옥같이 맑은 물에/세상의 먼지와 때를 씻음이 어떠리.”

조선 영조 때 ‘해동가요’를 펴낸 김수장의 시조이다. 삼복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을 찾아 들어가기를 권하고 있다. 모시 적삼을 입은 선비가 탁족(濯足·산간 계곡의 물에 발만 담그고 더위를 쫓는 놀이)을 하면서 시 읊는 모습을 상상하니 꽤 낭만적이다.

내일이 중복이다. 유난히 뜨거운 올여름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보양식이 필수일 터. 애호가라면 벌써 몇 그릇 비웠을 듯한데, 요즘엔 먹었다는 이도 먹으러 가자는 이도 없다. 보신탕 말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개 도축 금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욱이 애완견을 위한 호텔·병원·카페에 개 화장터·장례식장 등이 호황을 누리는 세상이 아닌가.

먹거리가 많고 많으니 아쉬울 것 없다. 복죽(伏粥·복날 먹는 팥죽), 민어탕, 장어탕, 용봉탕, 닭칼국수…. 특히 어린 암탉인 연계(軟鷄)의 뱃속에 밤, 대추, 마늘, 찹쌀을 넣고 푹 끓여 먹는 연계백숙(軟鷄白熟)과, 연계백숙에 인삼을 넣은 계삼탕은 예부터 복날이면 밥상에 오르던 인기 영양식이다. 연계백숙은 자음동화(ㄴ은 ㄱ 앞에서 ㅇ으로 소리 난다) 현상에 따라 영계백숙으로 변했고, 계삼탕은 귀했던 인삼이 흔해지면서 삼계탕으로 바뀌었다.

필자는 한여름엔 땀을 흘려가며 먹는 뜨거운 음식보다 시원한 냉면이나 메밀국수가 더 좋다. “메밀면은 이가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 먹어야 해. 입 안 가득 넣고 먹어야 메밀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어느 해 복날 지인의 말대로 따라 하다가 세상 뜰 뻔한 기억이 있다. 면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늘 사리를 추가해 먹는 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냉면이나 메밀국수를 먹다 양이 부족할 경우 ‘사리’ 때문에 고민했을 듯싶다. ‘사라(さら·접시)’, ‘사라다(サラダ·샐러드)’, ‘와사비(わさび·고추냉이)’, ‘지리(ちり·맑은 국)’ 등의 일본말과 형태와 발음이 비슷하니 말이다. 주변 사람들 눈치 보느라 “여기 사리 추가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못했으리라. 만약 그랬다면 이젠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사리는 순우리말이다.

사리는 동사 ‘사리다’에서 왔다. ‘사리다’는 국수, 새끼, 실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그랗게 감은 뭉치나 그 수량을 세는 단위가 ‘사리’다. ‘냉면 사리’ ‘라면 사리’ ‘당면 사리’ ‘국수사리’ 등으로 쓰인다. 이 중 국수사리는 한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랐으니 붙여 써야 한다.

‘사리다’는 뱀 등이 몸을 똬리처럼 동그랗게 감은 모양새를 가리키기도 한다. 국수를 말아놓은 모습과 아주 비슷하다.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살살 피하며 몸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몸을 사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앞으로도 가마솥 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니 여름나기가 쉽진 않을 성싶다. 뜨겁든 차든 몸에 좋은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게 가장 좋다. ‘더위만 빼고 다 잘 먹자’라는 말이 딱이다. 육당(六堂) 최남선도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 해서 “복날은 더위를 꺾어 정복하는 날”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처럼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는 것도 좋겠다. jsjysh@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20년 째 공회전' 허울 뿐인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 [외국 금융사 脫코리아]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빼빼로 과자 선물 유래는?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100일 넘긴 배달앱 수수료 합의, 오늘이 최대 분수령
  • '누누티비'ㆍ'티비위키'ㆍ'오케이툰' 운영자 검거 성공
  • 수능 D-3 문답지 배부 시작...전국 85개 시험지구로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14:37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3,178,000
    • +2.75%
    • 이더리움
    • 4,399,000
    • -0.81%
    • 비트코인 캐시
    • 603,500
    • +0.67%
    • 리플
    • 810
    • +0.75%
    • 솔라나
    • 287,200
    • -0.14%
    • 에이다
    • 809
    • -0.74%
    • 이오스
    • 787
    • +8.55%
    • 트론
    • 231
    • +2.21%
    • 스텔라루멘
    • 153
    • +2.68%
    • 비트코인에스브이
    • 83,150
    • +2.21%
    • 체인링크
    • 19,520
    • -2.69%
    • 샌드박스
    • 410
    • +5.1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