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같은 부호도 그려 놓았다. 입주민들이 노여워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그분 부탁은 이 ‘호소문’을 컴퓨터로 좀 보기 좋게 쳐 달라는 거였다. 그러면 자동문 비밀번호 입력기 옆에 붙이겠단다. ‘애완견 오물’을 ‘개 오줌’이라고 바꾸고 거의 그대로 타이핑해 줬다. “현관 바로 앞에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한 줄 추가는 했다. 젊은 것들이 (집 안팎에서 속 터지고 있는 건 내 잘 알고 있지만), 몇 걸음만 걸으면 꽁초를 버릴 데가 있는데도 그게 귀찮아서 현관 바로 앞에 던져 놓은 게 눈에 거슬린 지 오래였는데, 미화원의 호소에 편승해 내 민원도 해결하고 싶었던 거다.(많은 입주자 가운데 나한테 부탁을 한 건 글 쓰는 게 내 직업인 걸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인상이 좋아서 그랬으려니 생각했다. 아닌가?)
효과는 짧았다. 한 며칠 개 오줌 자국도, 담배꽁초도 안 보이더니 현관 자동문이 다시 열려 있고, 발끝으로 비벼 흉하게 뭉개진 담배꽁초도 턱 하니 버려져 있었다.
산속에 들어앉았고 단지 중앙에는 ‘자연산 소나무 숲’이 울창한 데다 바깥의 자동차 소리가 차단돼 “리조트 같다”, “강남 고급 아파트보다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듣는 곳인데, 사는 사람들 수준이 ‘이 모냥’이다. 산책로에 초록색 똥파리들이 들끓는 개똥이 안 보이는 날이 없고, 다 먹고 버린 음료수 페트병, 아이스크림·과자 봉지 따위도 뒹군다. 이런 것들은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 미화원 둘이서 단지를 돌아다니며 치운다.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하면 받아는 주는데, 보통 표정은 굳어 있다. 속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저분들 급여, 보나마나 최저임금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높을 것이다. 급여만 오르면 좋아들 할까? 아니다. 주민들 교양도 높아져야 한다. 예의도 차릴 줄 알아야 한다. 개는 바깥에서 오줌을 싸게 하고 똥은 치우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당장 그런 것들만 지켜도 소득이 오르는 것만큼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우선 일이 줄어들지 않는가? 무더위 속 불쾌지수를 견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전체의 교양과 예의 수준을 높이면 경제도 좋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고? 내, 지금 확실한 이론 모형을 제시는 못한다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은 안다. 영국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이다. 그는 “교양은 인간들 사이에 현재 존재하는 단 하나의 유대인 ‘현금 거래 관계를 초월하여 공동의 기쁨을 이룰 수 있는 원천’”이라고 했다. “돈만 있다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교양이 있어야 사회가 통합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경제학자 이영훈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경제가 나빠지면 인간의 교양 수준도 저하되는지, 경북 경주 옥산서원(조선 성리학자 이언적 선생을 모신 서원)에 소장된 서원의 지출부를 연도별로 배열해 보면 종이의 질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장부를 적은 글씨도 선비의 달필(達筆)에서 어린애의 졸필(拙筆)로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게 보여요”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경제와 교양은 같이 간다는 말이 아니고 무언가?
그러니 경제성장을위해 ‘최저교양위원회’도 구성해서 돌리자. 전 국민의 교양 수준을 올리자. 매년 10%씩 3년만 올려도 선순환이 일어나 그다음부터는 자동으로 교양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경제에는 ‘최저임금위원회’보다 더 도움이 될 거다. 위로는 사장님, 회장님, 의원님, 장관님, 위원장님 등등, 갑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최저 교양 수준을 올리자. 그래야 이 나라가 산다. 덥다. 그러나 더위 먹고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