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그룹 중 7곳이 사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중 삼성그룹, 롯데그룹은 이미 총수가 재판에 넘겨지는 등 오너 리스크를 겪고 있다.
최근 검찰의 기업 수사는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10대 그룹 밖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한진그룹, 부영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효성그룹, 유한킴벌리, 카카오, 네이버 등이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권도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은행 등 거의 모든 회사가 채용 비리로 사정당국의 수사 대상이 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 수사가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면서 “시대가 바뀔 동안 기업들의 의식은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더딘 모습”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과감한 혁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5대 그룹 모두 검찰 수사= 문재인 정부 들어 1년여 만에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5대 그룹이 모두 사정당국과 사법부의 영향권 아래 위치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1심에서 구속됐다가 2심에서 풀려났다. 제3자 뇌물죄에 대한 1, 2심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고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의 상고심은 조희대 대법관이 주심인 대법원3부가 맡았다.
더불어 삼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기소된 다스 사건에 연루돼 있다.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혐의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 간부의 불법 취업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SK그룹은 지난해 12월 SK건설 임원이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기지 공사 관계자에게 수주를 대가로 수십억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LG그룹은 총수 일가가 최근 소유하던 LG 계열사 주식을 양도하면서 100억 원대의 양도세를 내지 않기 위해 대주주 간 특수관계인 장외 거래를 일반 장내 거래인 것처럼 꾸민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경영 비리 혐의로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기업 수사 새로운 핵 ‘공정위’= 공정위 간부 불법 취업 의혹 사건은 검찰 수사의 새로운 핵으로 떠오를 만큼 기업에 부담이 되고 있다.
검찰은 애초 공정위 간부 출신 5∼6명을 수사선상에 올렸다. 그러나 인사혁신처에서 취업심사 기록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불법 재취업이 의심되는 공정위 전직 간부들을 추가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과징금 처분 등 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전관(前官) 영입이 보편화돼 있다.
문제는 일부 기업이 더욱 ‘힘 있는 인사’들을 편법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직자가 퇴직 전 5년간 속해 있던 기관·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곳에 퇴직일로부터 3년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 간부 불법 취업 의혹을 받은 곳은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현대건설, 현대백화점, 쿠팡, 신세계페이먼츠, 대림산업, JW중외제약의 지주사인 JW홀딩스 등이다.
최근 검찰 조직개편으로 해당 수사를 맡은 공정거래조사부가 3차장 지휘를 받게 된 만큼 검찰의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3차장 산하는 기업인과 정치인 등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온 특별수사부가 포진해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수사…총수들 정조준 = 사정 칼바람을 제대로 맞고 있는 곳은 항공 업계다.
조양호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사태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조 회장 일가가 받는 혐의는 10여 개에 이른다.
조 회장은 2002년 조중훈 창업주 별세 이후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상속세 수백억 원을 내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자택·호텔 공사 작업자, 운전기사 등에 대한 상습 폭행 혐의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가 있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고용 혐의를 받는다.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과 출입국당국은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
장남 조현태 대한항공 사장은 인하대학교 부정 편입학 의혹을 받는다. 조 사장은 조 회장과 함께 대한항공 상표권을 계열사에 부당하게 이전해 사익을 챙긴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도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은 최근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을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에 배당했다. 형사6부는 조 회장의 조세포탈, 횡령·배임 혐의를 수사 중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