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주택 시장은 참 묘한 것 같다. 정부가 규제책을 잇따라 내놓았는데도 일부 지역은 오히려 상승세가 가파르다.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인상안이 나오자 세금 영향이 약한 지역으로 투자자들이 몰려 집값 오름폭이 커지는 양상이다. 비싼 아파트 비율이 높은 서울 강남권은 추락하고 있는데 반해 종부세 무풍지대인 과표 기준 6억 원 미만 아파트가 많은 외곽은 상승세다.
올해 초반만 해도 강남권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던 강북권의 가격 상승률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그동안 강남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올랐다는 공감대 영향도 있지만 양도세와 종부세와 같은 세금 부담이 적은 주택을 찾는 투자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게 상승폭을 키운 듯하다.
강남권은 대부분 가격이 비싸 1가구 1주택자도 종부세와 양도세를 피하기 어렵지만 외곽 동네는 세금 부담이 적은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1주택자 입장에서는 앞으로 가격이 대폭 오른다 해도 2년 거주 후 매각할 때 9억 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양도세를 물면 된다. 종부세는 시세가 16억 원가량 돼야 부과 대상이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2가구 이상 다주택자는 셈법이 좀 복잡하지만 그래도 강남권보다 가격이 싸 부담이 적다.
이런 이유로 인해 종부세 부과 대상이 아닌 저가 주택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결국 매입 수요가 불어나면 관련 지역 아파트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주택 가격 동향 자료를 봐도 그렇다.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 아파트 가격은 5월부터 곤두박질치고 있는 반면 강북·도봉·은평·금천구 등과 같은 외곽지역은 오히려 상승 폭이 커졌다. 이들 지역의 지난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모두 서울 평균 0.21%보다 높았고 특히 강북은 0.67%를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가 강했다. 이달 9일 발표된 주간 단위 조사에서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온갖 규제를 가했으나 서울 집값은 오히려 상향 평준화 형세다. 강남권은 하락세지만 강북권 등의 외곽 지대는 오름세가 가팔라지면서 두 권역 간의 가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주택시장 전반이 안정되기를 바랐으나 실상은 정책 취지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울 전역의 집값·전세가가 높아지면 무주택 서민은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든지 아니면 집 규모를 줄여야 한다. 오른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렇다.
주택 가격 평준화 양상은 결국 무주택자들의 삶만 고달프게 만든다.
집값을 잡기 위해 투자자들을 묶어 놓을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세트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앞으로 재산세 손질이 남아있다. 세율은 손대지 않고 공시가격과 공정시장 거액 비율을 올리는 방안을 생각하는 분위기다.
공시가격 비율과 시장 공정가액 비율을 높이면 세금은 늘어나게 된다. 현재 시세의 70% 수준인 공시가격을 80%로 올리고 재산세 과표 계산 기준인 시장 공정가액 비율 60%를 70%로 조정해도 세금은 듬뿍 불어난다.
하지만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주택을 매집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이 정도의 재산세는 별것 아니다. 얼마든지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앞으로의 가격 상승폭을 생각하면 세금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는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도 주택 투자자는 죽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데다 있다 해도 아파트만큼 수익률 높은 상품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이 되는 아파트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락 폭이 깊었던 강남권 아파트 시장도 최근 들어 진정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한국감정원의 9일 기준 주간 주택 가격 동향을 보면 서초 아파트값은 하락을 멈췄다. 지난 5월 -0.12%에 이어 6월 -0.14%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보합세를 나타냈다. 강남도 지난달 0.46%까지 떨어졌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하락률이 -0.05%로 대폭 둔화됐다. 송파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달 말까지 지켜봐야 정확한 진단이 나오겠지만 이런 추세로 간다면 조만간 상승세로 바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