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메일’이란 것을 사용하던 때의 해프닝이 생각난다. 이메일로 제자나 친지들이 전해오는 소식을 받아든 것까진 좋았는데, 왠지 컴퓨터 화면 속 편지는 컴퓨터를 끄는 순간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굳이 프린트를 해서 화면 대신 지면에서 사연을 읽곤 했다. 기왕이면 진짜 편지 읽는 기분을 살리고 싶어 하얀색 A4용지 대신 은은한 빛깔의 편지지에 프린트를 한 적도 있었다.
아날로그 세대에게 편지란 진작부터 쓸까 말까,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 길고 긴 사연이 좋을까 짧고 간결한 메시지가 나을까… 수많은 밤을 ‘망설임’ 속에 보냈던 기억, 막상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후엔 지금 부치지 말걸, 편지 대신 사랑한다고 직접 고백할걸, 내 마음을 오해하면 어쩌지… 어리석은 ‘후회’를 거듭하던 기억의 저장고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편지의 백미라 할 ‘기다림’이 빠져선 곤란할 듯. ‘지금쯤이면 답장 올 때가 되었는데’ 학교 우편함을 기웃거리거나 동네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던 추억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게다.
하여, 이메일을 받고 즉시 답장을 하기보다는 적당히 뜸을 들이고 한두 번 망설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 답장을 해주었다. 간단한 사무적인 답장은 체질에 맞지 않기에 장문(長文)의 답장을 해주는 성의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비판 일변도였다. 즉각 답장을 해주지 않는 데 대해 무성의하거나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길고 긴 편지에 감읍하기보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선호함이 분명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요즘은 나도 ‘즉답’하는 습관이 생겼고, 두세 줄짜리 답장을 보내는 요령도 터득했으니 이만하면 성공적 적응이라 할 만도 하겠다.
이런 와중에 손글씨로 직접 쓴 엽서를 받고 보니 이메일의 편리함에 오도된 나머지 편지 한 통, 엽서 한 장 보내지 않는 나의 생활이 참으로 삭막하게 다가온다. 오래전 풍습을 오늘도 소중히 이어가는 일본인들의 여유로운 심성이 부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나도 7월이 가기 전에 편지를 써서 부치면 어떨까? 이제 장마가 끝나면 폭염이 기승을 부릴 텐데 블루베리 마지막 수확에 땀 흘리시는 이모님께, 정갈한 손글씨로 건강과 안부를 여쭙는 편지를 부쳐야겠다. 올여름 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나는 언니에게도 ‘은퇴 이후가 더욱 기대된다’는 축하의 마음을 담은 엽서 한 장을 띄울 생각이다.
조금 더 마음이 넉넉해진다면 “칙칙하고 긴 터널 속에서 항상 정(등잔 등)이 되어 주시어 무사히 통과했습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온 제자에게도 “엽서 한 장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어 고맙노라”고 “이젠 자신의 등을 두드려줄 때가 되었노라”고 답장을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