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회식 절벽’에 선 한솥밥 리더십

입력 2018-07-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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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은 근무의 연장인가, 단지 오버 타임인가. 같은 말 같지만 배경을 살피면 전혀 다른 입장을 반영한다. ‘회식=근무연장’은 주로 회식 옹호론의 근거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한솥밥을 통해 연대의식을 다지는 회식이야말로 사무실에서 배울 수 없는 비공식 소통의 마당”이라며 회식 개근을 강조하곤 했다. “지식, 의식 위에 회식 있다. 회식 눈도장이야말로 조직 충성도의 확실한 지표”라고 호언장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직원의 회식 결석 횟수를 보고 이직(移職)시그널을 읽는다는 리더도 있을 정도다.

반면 직원들은 ‘회식=오버타임’이라며 회식 무용론 내지 피로증을 토로해왔다. 오죽하면 신세대 직원들이 회사 가기 싫어하는 이유 1위가 회식 때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까지 나왔겠는가. 꼰대 상사 판별에 빠지지 않는 것이 회식 강요 항목이다.

회식 옹호론자들은 한솥밥을 먹으면 “맺힌 것이 풀린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반대론자들은 오히려 더 꼬인다고 반박하기 일쑤다. 앞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소리 높여 외치면, 뒤에서 “우리가 남이지” 하며 소곤대곤 하는 게 회식 풍속도이기도 했다.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실행되며 회식 논란은 일단 반대론자의 판정승으로 결론 난 셈이다. 고용부의 근로기준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내 친목 도모를 위한 회식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식을 가급적 자제하거나 직원 동의하에 최소한도로 시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유통 등 일부 업계의 경우 유연근무제를 도입, 조기 출근조와 마감조를 분리해 다함께 모이는 회식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 여파로 오피스 타운 인근의 식당은 썰렁해져 벌써 ‘회식절벽’ 현상을 실감할 수 있다는 언론보도다. 평상시 점심 식사도 자기계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혼밥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는 추세다.

회사나 친구를 뜻하는 company는 com+pany로, 함께 빵을 먹는 데서 유래했다. 우리말로 식구(食口)는 어떤가.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같이 먹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로 끈끈함으로 이어준다.

내로라하는 리더들치고 ‘밥상’에서 밥심을 발휘한 일화 한 토막 없는 이가 드물다.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은 공식 회의 후엔 꼭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은 방에서 친목경영을 위한 회식을 강조했다. 직접 일어나 돌면서 술을 따라주고 대상에 따라 화제를 바꿔 대화했다. 메뉴는 전골요리만을 고집했다. 한 냄비를 둘러싸고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어깨와 무릎을 부딪치며 삶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이 깊어진다는 생각에서다.

YS가 정적(政敵)의 입장을 바꾸게 만든 결정적 장면도 ‘식사 정치’였다. 청와대로 불러 따뜻한 밥 한 끼 내놓고 정치 얘기는 일절 없이 “이거 자네가 좋아하는 거지”라며 반찬을 일일이 집어 수저 위에 올려주더라는 것. 대통령의 이런 정성에 그는 결국 YS의 편이 되었다.

실제로 밥상에서 발휘되는 밥심은 크다. 케빈 니핀 미국 코넬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그룹의 업무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팀을 가족처럼 느끼게 되면서 밥상 공동체 의식이 팀의 구심적 역할을 해서다. 연구진이 중소 도시의 소방서 13곳을 방문해 3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식사를 함께 자주 하는 팀원일수록 협력적이었다. 두 배나 높은 경우도 있었다.

최근의 회식절벽 세태들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가정의 밥상머리 훈화가 사라진 데 이어 조직에서도 밥심 리더십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 같아서다. 돌이켜보면 가정 내 소통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식구들이 밥상머리를 같이하지 못하면서부터다. 회식절벽이 그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 걱정된다. 얼굴을 마주하는 한솥밥 밥상도, 밥심 리더십도 사라질 앞으로의 세태에서 식구(食口), 회사(company)를 대체할 새 단어는 무엇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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