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三金)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는 노환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으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1녀가 있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ㆍ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정치계에 등장, 1963년에는 공화당 창당을 주도, 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며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ㆍ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ㆍ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민주공화당 부총재를 거쳐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제11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결과적으로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역대 최다다.
아울러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 두 번째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 전 총리는 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때 '3김(金) 시대'를 이끌며, '풍운의 정치인'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대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주도하며 김대중 당시 후보를 지지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참패의 책임을 지고 은퇴를 선언, 영원한 2인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