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오늘, 이 순간을 잘 살고 싶다

입력 2018-06-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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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서 어떤 분이 말했다. “올해도 다 갔다.” 곧 7월이 온다는 뜻이다.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직 거의 절반이 남았는데 무슨 한 해가 다 갔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로 시간을 너무 폭력적으로 당겨 버린다. 자신을 과거나 미래에 두길 좋아하고 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이 고통스러워 그런 것일까? 이상적인 상상세계에 빠져 있는 것일까?

내 친구 하나는 오후 7시만 되면 “오늘 하루도 다 갔다”라고 말하고, 어느 후배는 50세인데 80이 다 되어 간다고 노래처럼 늘 말한다. 그중에도 아직 여름 햇살이 남아 있는데 하루가 싹 가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짜증스럽다. 아니 앞으로 5시간이 남았는데 하루가 다 갔다니? 5시간이면 역사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시인은 명작 하나를, 화가는 명작의 밑그림은 거의 그릴 수도 있는 시간이다. 5시간은 밥을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간을 확 당겨 버려서 60세가 된 사람이 “아, 이젠 다 살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불교에는 ‘일일일야 만생만사(一日一夜 萬生萬死)’라는 말이 있다. 하루 낮 하룻밤에도 만 번 태어나고 만 번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시간성에 대해 너무 불성실하다. 한 개를 한두 개라고 하고 세 개를 서너 개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는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러나 시간을 너무 밀어붙이거나 확 당겨버려서 아직 살지 않은 시간을 딱 잘라 없애버리는 경향은 나쁜 습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년을 산다 해도 별것도 아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20년 늦게 죽은 사람의 묘도 별 다를 게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요즘 따라 저리게 느낀다. 오늘 바로 지금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게 되고 창밖 녹음을 감사하게 바라본다. 시인 김언의 작품 중에 ‘있다’라는 시가 있다.

“나뭇잎이 올라가면서 더 푸르고 있다/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는 나뭇가지가 더 올라가면서 가늘고 있다/ 여름 한창을 가늘고 있다/ 여름이 가늘고 있다/ 낮이 가늘고 있다/ 한낮이 사라지고 있다/ 온데간데없이 있다/ 부지런히 도착해 있다.”

삶이란 오직 이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찰나라는 말이 그래서 섬뜩할 정도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내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과거나 미래에 머무는 것일까. 그것이 종교가 지적하는 인간의 한결같은 집착이지 않겠는가. 마음을 현재에 머물게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정념수행(正念修行)이라고 한다. 염(念)은 현재를 뜻하는 금(今)과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합쳐진 말이라고 읽었다. 곧 정념이란 마음이 현재에 머무는 것이란다. 흔히 마음 챙김(mindfulness)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본다. 나에게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는 방법을. 중국 송대 성리학자인 장사숙의 좌우명 하나가 떠오른다. “견선여기출 견악여기병(見善如己出 見惡如己病)”이라, “착한 일을 보거든 자기가 한 것처럼 기뻐하고 나쁜 일을 보거든 자기의 병인 것처럼 아파하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렇게만 산다면 오래 살지 않아도 많이 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오늘 하루도 참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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