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황금기가 끝나는 1940년대는 바로 암흑기로 진입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지만 읽고 쓰기는 계속되었다. 때문에 필기구가 필요했고 만년필 역시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다.
새롭게 등장한 것 중 가장 강력한 존재는 ‘파커51’이었다. 파커51은 물량을 댈 수 없어 사과 광고를 낼 만큼 인기가 높았지만, 이 시기에 파커51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산업디자인 세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만년필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헨리 드레이퍼스, 레이먼드 로위, 할리 얼 등이다.
헨리 드레이퍼스(Henry Dreyfuss, 1904~1972)는 그의 저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디자인 철학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물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디자이너였다. 그의 디자인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송·수화기가 함께 달린 전화기로, 몸체 가운데에 다이얼이 있는 전형적인 옛날 전화기이다.
그는 만년필로는 에버샵사(社)의 ‘스카이라인’(지평선이라는 뜻)을 디자인했다. 지금 보면 이상하게 생각될 만큼 머리가 큰 가분수이지만, 상의 주머니에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잘 꽂고 뺄 수 있게 디자인된 것이었다. 또 필기할 때 이 큰 뚜껑이 균형을 맞추어 손이 편안하도록 설계돼 있다.
스카이라인은 파커51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성공했다. 이 성공에 고무된 에버샵사는 욕심을 내 더 유명한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코카콜라 병과 럭키스트라이크 담뱃갑을 리디자인(redesign)한 레이먼드 로위(Raymond Loewy, 1893~1986)였다.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만년필은 ‘심포니’였는데, 유선형으로 깔끔한 모양이었지만 사람들이 지갑을 열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깔끔하기만 했을 뿐 이미 1930년대에 유행한 유선형 만년필과 별반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은 했지만 회사를 구원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워터맨사는 이듬해 바로 미국 시장에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에버샵사도 파커사에 인수된다. 에버샵이 넘어간 결정적 요인은 볼펜에 투자해 실패한 것이지만, 누구나 탐낼 만한 만년필을 만들어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유능하고 유명한 디자이너라도 만년필 세계는 쉽게 허락되는 곳은 아니다. 이후에도 많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만년필을 디자인했지만 명작으로 불릴 만한 것은 없다. 이 오래되고 진지하면서 아름다운 세계는 누구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