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의 망령을 깨우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소식도 있었으나, 그보다 이탈리아 정국 혼란이 더 크게 작용했다. 3월 초에 총선을 치렀음에도 아직까지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안은 유명하다. 파스타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중소 정당들의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잦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가 64번이나 구성되었다.
정부가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불확실성의 주범으로 언급되지만 정부가 구성되어도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이는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의 정당들이 새 정부의 주역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제일 약진하며 최다 의석을 차지한 오성운동이 신생 정치세력으로 변화를 내세우며 기성 체제의 전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당연히 국정을 운영한 경험이 없으며 지향점 자체도 애매하다. 또 다른 약진 세력은 ‘동맹’이라는 이름의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트럼프의 ‘미국 우선“과 흡사한 ‘이탈리아 우선’이라는 슬로건과 반(反)난민 기치를 내세우는 보수적 대중영합주의 세력이다. 이 두 정당의 의석이 과반수를 넘었기 때문에 공동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두 정당은 이미 지난주 총리를 지명하는 등 정부 구성을 시도했다. 하지만 반EU 학자의 재무장관 임명을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정부 구성이 무산되었다. 이후 대통령이 IMF 출신 경제학자를 임시정부 총리로 임명하고 전문 관료 중심의 정부 구성을 시도했으나 의회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이 또한 물 건너간 듯하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재무장관 지명자를 교체해 정부 구성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7월에 총선을 다시 치를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여론은 3월과 별 차이가 없어 비슷한 결과가 점쳐지고 있다. 이럴 경우 7월 이후에도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도돌이표다.
재무장관 예정자를 비토한 대통령의 결정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신진 정치세력들이 큰 화근(禍根)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기존의 틀을 뒤집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향점이다. 그런데 현재 유럽에서는 유럽통합의 대전제 아래 단계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EU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의 대중영합주의와 유럽통합의 프로젝트는 상극이다.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공약을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더라도 자국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의 판단에 따라 통화가 공급되는 유로존 시스템은 오성운동과 동맹의 신진 세력에게는 매국적 주권 포기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유권자들은 유로화 사용을 선호하는 동시에 원초적 부족주의(primitive tribalism) 뿌리의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지금과 같은 대중영합주의적 세력의 약진이 계속될 경우 예상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개연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위험 자산을 처분해 안전 자산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내부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리스 재정위기 때와 달리 이탈리아나 유럽의 경제 상황이 양호한 가운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그리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경제임을 감안하면 지금과 같은 정치 문제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이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유로존과 세계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