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잊힌 섬, 순위도(巡威島)

입력 2018-05-3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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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지식경제부 차관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깊은 전쟁의 상처가 핏줄을 통해 전해 내려온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보다 수적으로는 훨씬 더 많아진 지 오래지만, 남북의 대치가 오랫동안 이어져 오면서 우리는 모두 치유되기 어려운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들리는 도보 다리에서 남북 정상이 대화를 나누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특별한 감회와 무성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1846년 5월 외국인 선교사의 입국로(入國路)를 개척하라는 미션을 받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제물포를 출발해 백령도에 도착해 서신과 지도를 전달하고 6월 5일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가게 된다. 순위도는 백령도나 연평도와 달리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우리 지도에서는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섬이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간신히 찾아낸 순위도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170여 년 전 한국 최초의 사제가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가게 된 기록이 남아 있는 섬 순위도는 지금은 분단의 비극으로 우리 지도에서는 이름도 찾아볼 수 없는 잊힌 섬이 되어 있었다. 순위도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쳐 군 복무를 하는 연평도와 백령도의 바로 지척에 있는 섬이다.

지나온 200여 년, 식민지배의 슬픈 역사와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뭔가 희망의 빛이 보인다는 느낌이 드는 요즈음이다. 8년 전 연평도에 포격이 있던 날, 아들은 해병대 현역 군인으로 그곳에 있었다. 모든 사고와 판단이 멈추었던 그날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은 연평도에서 우리는 평화의 소중함을 생각하면서 순례를 시작했다. 순례는 조국의 평화통일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부부가 같이 가는 기도의 길이었다.

순례의 과정에서 만난 김대건 신부의 삶과 행적에 순위도가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섬이 연평도에서 육성으로 소리 내도 들릴 만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나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섭리에 전율하고 말았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절실하게 찾을 때,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기도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침묵 속에서 내려온다는 느낌이었다.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 일대가 평화수역으로 지정되어 남북의 연결 고리가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렇게 기도하던 조국의 평화통일이 먼 훗날의 소원만이 아닌 손에 잡히는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통일을 공부한 어느 분의 책에서 통일에 대한 절실한 갈망이 통일을 이루는 가장 최우선의 조건이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 한반도에는 우리 모두의 절실함이 넘쳐 흐르고 있다.

이제는 마음 깊은 곳에 절실함을 간직하고 차가운 이성으로 준비해야 할 때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씀하신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가 가장 필요한 시기이다.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전은 가히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치열할 것이다. 남북의 경제 교류협력은 일방의 시혜적 조치가 아닌 상호간에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들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같이 살아온 하나의 경제 단위에서도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둘러싸고 논쟁과 이견이 허다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70여 년간 다른 경제 체제를 유지해온 남북의 경제 협력을 위해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과제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제 중 많은 것들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차가운 이성의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되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해법을 찾는 냉정함을 놓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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