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포천이 발표한 매출액 기준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여성 CEO는 24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32명에서 25% 줄어든 규모다. 전체 비율로 따지면 6.4%에서 4.8%로 감소한 것이다.
최근 몇 달간 500대 기업에 속한 여성 CEO 중 3분의 1 이상이 사임했다. 이들이 회사를 떠나는 속도는 남성 CEO와 비슷했는데 문제는 여성 CEO가 떠난 자리에 여성 CEO가 선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사임을 밝힌 대표적인 여성 CEO는 캠밸수프의 데니스 모리슨, 마텔의 마거릿 조지아디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의 맥 휘트먼 등이 있다.
비즈니스 리더들은 단기간에 여성 CEO 비율을 급격히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임원 채용 기업 콘/페리인터네셔널의 제인 스티븐슨 대표는 “정식 승진으로 여성 CEO를 임명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이벤트성으로 여성 CEO를 임명하면 여성 CEO 비율은 지금처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헤드헌팅업체 스펜서스튜어트가 S&P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을 지난 5년간 추적한 결과 연속해서 여성 CEO가 기업을 운영한 곳은 담배기업인 레이놀즈아메리칸뿐이었다. 레이놀즈아메리칸의 수잔 카메론 전 CEO는 2017년 1월 데브라 크루 전 CEO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그러나 브리티쉬아메리칸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해 12월 크루 CEO는 물러났다.
근본적으로 여성 CEO 비율이 적은 이유는 CEO로 승진할 여성 임원이 적어서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비영리 기구 린인과 컨설팅 업체 맥킨지가 작년에 222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은 20%에 그쳤다. 스티븐슨 대표는 “여성 CEO를 앉히는 것은 체스판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며 “움직임을 일으키려면 임원들에서부터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 CEO가 한 기업 내에서 오래 유지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기업이 위기를 겪을 때 여성 CEO를 영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타 주립대학 연구에 따르면 2015년 이전에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CEO를 역임한 여성들을 조사한 결과 해당 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을 때와 취임 시기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도널드 햄브릭 경영학 교수는 “남성 대다수가 CEO직을 피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기회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사임을 발표한 마텔의 조지아디스 CEO도 구원투수로 영입된 경우다. 마텔은 4년간의 판매 부진을 끝내기 위해 지난해 2월 구글 출신의 조지아디스 CEO를 파격적으로 영입했다. 당시 조지아디스는 마텔의 주주들에게 “변화를 위한 중요한 시기에 업계의 우상인 기업을 이끌게 된 것은 특권과도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임기 1년을 넘긴 지 얼마 안 돼 조지아디스는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