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에 휘둘리는 기업들…‘1% 지분’ 엘리엇에 흔들린 현대車 백년대계

입력 2018-05-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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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우호지분 31%에도 ‘주주이익’ 앞세운 엘리엇 반기에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무산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결국 외국계 자본을 규합한 엘리엇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 정몽구 회장과 주요 계열사가 우호지분 31%를 쥐고 있었으나 ‘주주이익’을 앞세운 1% 지분의 엘리엇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를 골자로 한 제도적 뒷받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뒤따르고 있다.

23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29일로 예정했던 주주총회를 취소하고 그룹 차원의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 마련에 착수했다. 모비스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반대 의견을 권고하고, 그에 따른 주주들의 의견을 고려한 결과, 현재 방안을 보완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주총이 취소된 직후 정의선 부회장 역시 입장 자료를 통해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곧바로 ‘플랜B’ 가동에 나섰다. 분할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가치평가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컸던 만큼 양사의 분할합병 비율을 재조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엘리엇을 포함한 투자자와 자문사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을 그대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분할사업을 중심으로 새 회사를 만들어 자본시장에 상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시장의 가치 평가를 거친 뒤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도 공정성을 추가할 수 있다. 다만 상장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뒤따른다.

현대차그룹은 최적의 시점에 맞춰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을 짰다. 정몽구 회장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 우호지분이 30%를 쥐고 있음에도 1% 투기자본(엘리엇)의 바람몰이에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반대한 엘리엇처럼 국내 증시에 투자 중인 외국인 펀드는 2만 개가 넘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외국인 집합투자기구(펀드)는 3월 말 기준 2만1328개. 2008년 3월 말 1만 개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10년간 112.7%나 증가했다. 언제든 세력을 규합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투기자본’도 상당 부분 속해 있다.

최근 외국 자본과 국내 기업 간 경영권 분쟁이 잇따르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은 15일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인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특정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앞서 SK㈜는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 KT&G는 2005년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과 경영권 분쟁을 겪기도 했다. 외국계 자본을 규합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기를 든 엘리엇 역시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반대와 삼성전자의 분할과 나스닥 상장 등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워 압박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투기자본 중 일부는 우리 국부 펀드를 이용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아 투자해온 한국투자공사(KIC)는 엘리엇 펀드에 5000만 달러(약 540억 원)를 투자해 왔다. 정부가 엘리엇에 투자하고 엘리엇은 다시 이를 바탕으로 우리 기업을 공격하는 셈이다. KIC 측은 “이해 상충, 법령 위반 여부 등을 감안해 엘리엇 펀드와 투자계약 해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상장사협회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 대한 이번 공격은 정책 당국이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상황에서 벌어진 사례라 충격이 크다”며 “상시적 경영권 위험은 국가 경제에 큰 걸림돌인 만큼 선진국 수준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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