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손잡고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할머니 이야기’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할머니’는 10대 1이 훨씬 넘는 경쟁을 뚫고 뽑힌 600명가량의 할머니들인데, 안동까지 가서 과연 ‘일’이 무엇이고 과연 ‘사랑’이 무엇이고 과연 ‘생의 가치와 보람’이 무엇인지 강의랍시고 하고 왔지만, 저는 객석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할머니들이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무릎학교라고도 합니다. 저는 외할머니의 무릎이 제 첫 번째 교실이었지요. 옛날 호랑이 이야기도 하시고 콩쥐팥쥐 이야기도 했지만 제 기억에 더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이야기 중간마다 흘러나오던 외할머니의 한숨입니다. 어쩌면 그 한숨을 풀면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올지도 모릅니다.
저는 외할머니의 무릎에서 어머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는데 참 자랑을 하고 싶은 아이라는 것도 외할머니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까지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하고 제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어요. 남편도 자식도 자랑할 수 없어서 인생이 텅 비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만큼 외할머니 무릎이 생각납니다.
할머니는 작은 구멍가게를 하셨는데 제가 가면 사탕부터 꺼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이 되어 한글을 배웠다고 하자 날 무릎에 눕히고는 한숨부터 쉬며 말씀하셨습니다. “니는 좋겠다. 내가 글을 알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더 될끼다.” 그 말씀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 인생은 두 줄이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경남 거창군 안의면에서 태어나 구멍가게를 하다가 ○○○○년에 눈감았다.’ 도무지 외할머니 인생은 그 외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지만 외딸을 시집보내고 겪는 여러 인생사는 모두 외할머니의 근심이었고 통절한 한이었을 겁니다.
30대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딸은 시집살이 속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낸 이야기까지 외할머니도 할 말이 많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 무릎은 제 인생의 학교 교실이며 운동장이며 세상사 이야기를 듣는 연극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 성장에 아주 중요한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모인 이들은 57세부터니까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은 여성들이었지만, ‘이야기 할머니’에 신청해 뽑히고 교육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나라의 힘을 보는 듯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마무리에 속하는 나이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가 되신 것을 먼저 축하하고, 그 일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서도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도 소중하고 보람 있는 일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정서를, 그리고 인간적인 사랑까지를 나눈다면 이야기 할머니들의 활동은 아주 숭고하고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아이들에겐 성장의 도움이, 할머니들에겐 생의 보람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빕니다. 이 일이 개인적인 모든 허탈함을 씻겨주는 새로운 탄생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