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골퍼] ‘와인업계의 골프존’을 꿈꾸는 국제변호사 박성수 몬도델비노 코리아 대표이사

입력 2018-05-11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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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재래시장에서 ‘와인장터’ 개장

크리스마스에 재래시장에서 ‘와인장터’를 열었다면? 성공했을까, 아니면 쪽박을 찼을까. 99.99%의 고객들은 아마도 실패를 했을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맞다. 철저하게 고배를 마셨다.

시장 예측을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와인문화의 변화를 바랐던 것일까. 답은 후자다. 몬도델비노 코리아 박성수 대표(47)는 함박 눈이 쏟아지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달달한 쓴맛’을 톡톡이 봤다.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면서 한국시장을 잘 몰랐던 겁니다. 한국은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전에 국산골프채라고 하면 아무리 잘 맞아도 다음 날 고가품인 외산으로 바꿔서 골프장에 갑니다. 와인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와인문화는 무엇보다 고가품과 좋은 것만 찾기 때문에 대중성을 갖기가 쉽지 않죠. 아마도 골프처럼 와인문화를 바꾸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골프는 그나마 많은 변화가 오고 있지만 와인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그다.

그를 만나면 두 번 놀란다. 훤칠한 키와 외모는 배우를 닮았고, 미국에서 활동한 국제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변신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사회를 우습게(?) 알고 한동안 방황으로 시간을 보냈다. ‘놀기만 하던’ 대학 2년 때 탈출구로 군(軍)에 자원했다. 군에서 생전처음 낫질과 삽질을 배웠다. 대학재학중에 입대해 행정병으로 제대를 했다. 96년 복학하면서 삶이 180도로 바뀌었다. 군생활덕이었다.

“노동의 가치를 배웠죠. 열심히 살아야 하고,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고 결심했죠.”

졸업을 앞두고 IMF가 터졌다. 고민했다. 취업이냐, 미국행이냐. 이력서만 내면 대기업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는데 IMF로 인해 취업취소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그는 1, 2년 때 학점관리를 제대로 못해 대기업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잘됐다 싶어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달랑 손에 쥔 것은 부친이 마련해준 편도행 항공티켓이었다. 그도 학비와 주거비가 가장 싼 곳을 골랐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으로 날아갔다. 경영학에서 정치학으로 전공도 바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에서. 부친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지도하던 교수였던 것도 한몫했다.

미국은 말로만 듣던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었다. 생계형 영어로 오후 3시에 수업이 끝나면 중국집에서, 자정부터 새벽 7시30분까지 학교주차장에서 현금출납원일을 했다. 잠은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 남이 보면 최악의 생활이었다. 생소한 전공을 하면서 알바에 시달린 그는 그래도 순간 순간 행복했다. 손님에게 팁으로 받은 꼬깃꼬깃한 1달러를 다리미로 다릴 때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목표는 세웠습니다. 자유롭게 살려면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고. 몸은 고됐지만 마음만은 편했거든요. 틀에 박히지도 않고, 남의 눈치도 안보았으니까요.”

그러나 인생살이가 생각대로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졸업한 뒤 친구들과 어울려 로스쿨 스터디를 시작했다. 뉴햄프셔의 로스쿨에 들어가 법을 공부했다. 주경야독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열공했다. 덕분에 2003년 지적재산권에 대한 변호사 라이선스를 땄다. 특허변호사가 더 대접을 받았지만 이는 공대 출신들이 주로 획득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됐다 싶었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겠구나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미국 로펌 1000군데쯤 넣었을 겁니다. 그런데 단 2곳에서 연락이 왔죠. 그런데 가보니 한인 타운의 초라한 법률사무소였어요. 느낀 것이 있죠. 미국도 외국인에게는 차별이 심하다는 것을. 미국도 명문대학 위주로 취업이 된다는 것을. 7개월 동안이나 구직 할동을 했습니다만 모든 게 허사였죠.”

▲박성수 몬도델비노 코리아 대표
▲박성수 몬도델비노 코리아 대표
이상과 현실사이의 문지방에서 방황하던 그는 결국 한국행을 선택했다. 이유는 로스쿨시절에 집사람을 만나 방학 때 결혼했기 때문이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기에. 국내에 들어와 KT에 입사했다. 그런데 발령받은 곳이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대외협력팀이었다. 1년 지나 전공을 살리려고 그만 뒀다. 그리고 행운을 안겨준 곳이 1994년 창업한 법무법인 ‘아주’였다. 2006년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아주는 당시 국내 로펌 최초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8개국에 13개의 사무소를 설치했다. 국내 중소기업이 진출할 국가의 법률자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양대 벤처동문회 회장을 10년간이나 맡아서 한 그는 그동안 쌓은 인맥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한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로 국내 기업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모두 철수하는 바람에 아주는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사업이 올 스톱 된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는 대륙과 합병이 됐다.

위기는 기회인가. 2012년 아이가 생겼다. 한꺼번에 둘이나. 아들과 딸, 쌍둥이였다. 다시 한 번 갈림길에 놓쳤다. 진짜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족이 2명이나 더 늘었다. 1년 뒤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옮긴 곳이 프랑스계 글로벌 주류회사 페르노리카 코리아였다. 법률자문팀장이었다.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법률자문을 하면서 대회협력일을 하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 와인회사인 몬도델비노 사장과 친분을 맺게 됐죠. 10개월 정도 자문도 해주면서 신뢰가 쌓였을까요. 투자제안이 들어왔죠. 흥하든 망하든 제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몬도델비노 회장과 논의한 뒤 합작법인을 만든 것이죠.”

2016년 페르노리카를 그만두기 전에 변호사인 아내에게 먼저 의논했다. 더 늦기전에 와인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리고 나서 바로 뛰어 들었다.

1991년에 창업한 몬도델비노는 연간 300종 이상의 와인을 5000만병(550ml) 생산해 전세계 60개국으로 수출한다. 특히 몬도델비노는 와인생산을 위해 물의 100%를 재활용하고 있으며, 전체 사용에너지의 30%는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다. 유기농 와인 10%대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와인회사로는 처음으로 친환경 소재의 자외선 차단 플라스틱병으로 초경량 와인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와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난이도가 높은 골프장의 코스공략보다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언젠가는 막걸리를 파는 전집에서, 포장마차에서도 와인을 찾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양질의 와인이 보다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와야 합니다. ”

‘와인업계의 골프존’이 되는 것이 목표인 박성수 대표의 꿈이 언제쯤 이루어질는지 궁금하다. 안성찬 골프대기자 golfahn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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