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사적인 만남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보내졌으며, 외신들은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할 정도로 세계사에 길이 명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한 이번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문 대통령도 30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전 세계가 바라던 일로 한반도는 물론 세계사적 대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이 같은 역사적인 장면을 중학교에 다니는 딸은 보지 못했다. 학교 수업 때문에 못 봤다고 아쉬워하는 딸의 모습에서 문득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남북회담이 성공한다면 세계사에 한 페이지로 남을 큰일인 데다 두 번 다시 접해 보기 힘든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왜 학교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생생한 국가적 역사 현장인 데다 미래 남북 협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세대들에게 이 현장을 보여 주지 않으면 무엇을 교육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군다나 중학교 1학년인 딸은 학교의 자유학기제 채택으로 두 학기 동안 지식·경쟁 중심에서 벗어난 인성교육을 받고 있는데, 수업 때문에 생중계를 못 보게 한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딸의 학급 회장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교실 TV로 남북정상회담 생중계를 틀지 말라”고 한 점은 문제가 많다. 회장의 월권 행위인지, 학교의 지시인지 알 수 없지만 과연 학교가 역사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인지, 학교가 생각하는 현장 체험학습은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4강 경기 때 학교에서 방송으로 라디오를 틀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다가 결국 수업시간에 방송을 틀어줘 생중계한 적이 있다. 비록 경기에 져서 아쉬웠지만,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더욱 강해졌다. 가끔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를 얘기할 때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목청껏 응원했던 그때가 생각나곤 한다.
‘왜 이런 추억 쌓기와 생생한 역사교육 현장을 실제 교육현장에선 외면했을까’, ‘굳이 원칙대로 수업진도표대로 수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 ‘과연 그 한 시간의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아이들 교육 과정에 큰 지장을 초래할까’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단순히 인천교육청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제안한 교실 생중계 안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틀어주지 않은 것일까.
이에 몇몇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장의 역사의식 결여 때문’이라든지, ‘학교가 대입 위주 입시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이가 느꼈을 속상함보다 무너진 공교육의 실제 단상을 직접 보니 왜 이리 가슴을 저미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일까’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당시 수업 중 생중계를 본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의 현장 스케치 언론 보도를 보면 정상 간 군사분계선에서 악수할 때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며 “소름 돋는다”, “가슴이 울렸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국가 행사를 보며 감격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몇 번이나 올까.
교육 현장에서의 이번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외면은 대입 위주의 우리 공교육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다만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것은 청탁금지법 제안자로 유명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문재인 정부 대입 입시제도 개편을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돼 어제(30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점이다. 김 위원장은 두 딸 모두 전형적인 입시 교육 시스템에서 한발 벗어난 대안학교를 보낸 분인데, 이번에 어떤 묘수를 찾을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