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국수에 왜 ‘막’ 자를 붙여 홀대했을까?” 함께 먹던 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막’을 ‘닥치는 대로’, ‘품질이 낮은’, ‘아무렇게나 함부로’ 등 부정적인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생각한 모양이다.
국수를 내주며 건넨 식당 주인 할머니의 말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맷돌에 메밀을 껍질째 갈아서 국수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먹고 나면 이에 메밀껍질이 까맣게 끼곤 했지. 먹을 게 많은 지금이야 별식이라고 맛나게들 먹지만 우리 어렸을 땐 배곯지 않으려고 먹었어요.”
강원 춘천 인근 화전민들에게 막국수는 생계를 이어준 ‘원초적’인 국수이자, 가장 ‘가난한’ 국수였다. 쌀은커녕 밀가루도 구하기 힘들던 시절, 그곳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로 면을 뽑아 끼니를 때웠다. 뜨거운 장국에 말아 먹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고, 고추장에 비벼 먹고, 꿩이나 토끼라도 잡은 운 좋은 날엔 살코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고….
집집마다 끼니때가 되면 메밀로 면을 뽑아 정성껏(나 같은 날라리 주부도 가족의 먹거리엔 최선을 다하니까) 국수를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막국수의 ‘막’은 막고무신·막과자·막담배·막소주처럼 ‘품질이 낮은’, 혹은 막노동·막일·막말처럼 ‘닥치는 대로’의 뜻을 지닌 건 아닐 게다. “겉껍질만 벗겨 낸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아 만든 거무스름한 빛깔의 국수”라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마냥 ‘막’은 주재료인 메밀가루의 ‘거친’ 성격을 담았다.
메밀의 특성을 담는다면 막국수의 ‘막’은 ‘바로 지금’, ‘금방’의 뜻으로 보는 게 더 좋다. 메밀은 글루텐 성분이 없어 면으로 뽑아 삶으면 금방 불어 터진다. 메진(‘메지다’는 ‘차지다’의 반대말로 끈기가 적다는 뜻) 성질 탓이다. 그래서 막국수는 ‘막(금방)’ 만들어서 ‘막(바로)’ 먹어야 한다. 성질이 급한 만큼 거칠고 담백하며 순한 음식이 바로 막국수이니까.
그런데 메밀 음식으로 유명한 맛집에 가면 ‘온모밀’, ‘냉모밀’, ‘비빔모밀’ 등 ‘모밀’이 눈에 들어온다. 메밀과 모밀, 어느 것이 바른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메밀이 표준어이고 모밀은 강원도, 경상도, 함경도 지역의 사투리다.
메밀 하면 떠오르는 가산(可山 )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1936년, 조광)도 원제는 ‘모밀꽃 필 무렵’이다.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서 나고 자란 가산 선생이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처럼 소설 곳곳에 메밀이 아닌 ‘모밀’로 쓴 것은 당연하다. 이후 ‘모밀’이 메밀로 바뀐 건 표준어규정에 따라 제목과 내용에 손을 댄 것이다.
메밀은 참 재미있는 말이다. ‘뫼밀’이 어원으로 ‘산에서 나는 밀’이다. ‘국어생활백서’를 쓴 김홍석 선생은 “메밀의 ‘메’는 ‘산(山)’의 고어(古語)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멧돼지, 메감자, 메꽃, 메마늘’ 등이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말한다. 사투리로 남아 있는 ‘모밀’도 메밀의 고어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니 ‘뫼밀 → 모밀 → 메밀’이 성립될 수 있겠다.
막국수 그릇을 싹싹 비우고 일어서려는데, 식당 주인 할머니가 옥수수 막걸리 한 잔씩을 건넨다. 둘 다 얼굴에 ‘술꾼’이라고 쓰여 있나 보다. 덕분에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막국수엔 ‘막 걸러 낸’ 막걸리가 최고의 후식이라는 걸.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