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상태로는 하루 종일 멍하니, 부유(浮游)하듯 살게 된다. 그게 싫어서 억지로 더 자보려 한다. 다행히 조금 더 눈을 붙이게 된다면 머릿속이 말개지고 눈이 평화로워졌음을 알게 된다. 잠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잠은 행복’이라는 주장은 ‘삶은 불행’이라는 말을 뒤집은 것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잠을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탐닉과 같은 안락”이라고 했다. 젊을 때 글감을 찾기 위해 일부러 런던과 파리의 빈민가에서 거지 생활, 막노동 생활을 찾아 했던 그의 경험이 담긴 말이다. 거지는 추워서, 막노동을 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잘 잘 수 없었고, 가끔 깊이 잤을 때는 그 행복감이 관능적인 탐닉 같았다고 한 것이다.
오웰과는 달리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잠은 안락을 넘어, 구원(救援)이다. 199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1931~ )은 1987년에 발표한 ‘빌러브드’에서 흑인 노예인 여주인공이 딸 빌러브드만은 노예가 되는 걸 막으려고 자기 손으로 죽이게 한다. 그러고는 “아무도 몰래 삶을 포기하고 그만 죽고 싶다. 깨어 있는 대낮보다 잠든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고백하게 했다.
사랑에 속은 참한 여자가 주인공인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쓴 존 파울즈(1926~2005)도 그 주인공을 “저의 유일한 행복은 잠잘 때뿐, 깨어나면 다시 악몽이 시작된답니다. 저는 사막 한가운데에 버려진 것 같고, 감옥에 갇힌 것 같고, 유죄 선고를 받은 듯한 기분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무슨 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는지 도무지 저는 알 수가 없답니다”라는 회한에 빠트린다.
“서서히 나를 버리고 있는 모든 행복들 가운데, 수면은 가장 귀중한, 또한 가장 평범한 행복의 하나이다”는 여성으로는 345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혔던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1903~1987)가 자신의 대표작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 로마 오현제(五賢帝) 중 한 명인 하드리아누스에게 시킨 말이다. 고치기 힘든 병까지 앓게 돼 죽음을 앞둔 늙은 황제는 삶을 반추하면서 이제 잠까지 잘 못 자게 된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으로는 그런 느낌 없이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 사람들,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그 사람들은 잠을 잘 자고 있을까도 궁금해졌다. 김 장관, 김 의원, 조 수석, 조 전무 그리고 그만둔 김 원장 등등…. 아직까지 하는 짓을 보면 ‘잘못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잠이 행복이라며 눕는 즉시 바로 깊은 잠에 빠지고 있을 것 같다. 내일도 새날은 밝아온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또 중간에 잠이 깼다. 이래저래 깊은 잠을 못 자는 봄날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