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최근 1년간 15조 원이 증가해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했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돈 빌려 집을 못 사다 보니, 전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규제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해지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주택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NH농협)의 지난달 기준 전세대출 누적규모는 50조776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3월) 36조118억 원보다 14조7642억 원(41%)이 증가했다. 5대 은행 중에서는 NH농협은행의 증가폭(70.6%)이 가장 컸다. 다음으로 우리은행(44.6%), KEB하나은행(35.9%), 신한은행(33.7%), KB국민은행(31.8%) 순 이었다.
전세대출 금리도 최근 들어 오름세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은 지난주(9~15일) 전세대출 금리가 연 3.28%로, 전주(2~8일)인 2.91%보다 0.37%포인트 뛰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3.09%에서3.4%로, NH농협은행은 3.32%에서 3.34%로 각각 상승했다.
1월 전세대출을 시작한 카카오뱅크는 3%에서 3.01%로 금리를 올렸다. 국민과 신한은행은 각각 3.02%, 3.08%로 동일했다. 전세대출 급등은 주담대 규제로 매매 수요가 전세수요로 전환된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최근 들어 전셋값이 하락 추세이나, 과거에 비해 여전히 높다는 것도 대출액 증가 요인이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매매시장에서 대출 자체를 억제하다 보니 대출받아 집 사기가 힘들어져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가 늘었고, 작년에 비해 전세가격이 오른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기획부 팀장은 “주담대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집을 사려는 분들이 원하는 만큼 대출을 못 받고, 대신 전세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 전세대출이 늘고 있다”고 했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지역 평균 아파트 전셋값은 4억4746억 원으로, 3년 전(2015년 3월)인 3억3228억 원 대비 1억 원 이상 올랐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인 전세가율도 최근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지난해 내내(70.1~73.3%) 70%를 웃돌았다. 올 들어 입주물량 증가 등으로 전세가율이 60%대로 떨어졌다.
문제는 주담대 규제 강화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전세’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입주물량 증가로 세입자 구하기도 어려워(역전세난), 전세계약이 끝나면 새 세입자 보증금 받아 되돌려주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양 소장은 “매매시장이 불안해서 가격이 떨어지고 깡통전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임대사업자 등록을 활성화해 전세수요자들이 이동할 수 있는 안전한 공급 대책이 나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