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환율과 관련해 러시아와 중국에 경고를 보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은 통화 평가절하 게임을 하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꼬집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어떤 국가도 환율조작국 리스트에 올리지 않았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는 관측은 빗나갔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환율 카드를 빼 들지 않자 전문가들은 주요 2개국(G2, 미국·중국) 간 무역 전쟁이 격화하는 것을 의식해 미국이 수위조절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실제 환율 움직임과도 배치된다.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올해 3% 하락했고, 지난 12개월 동안은 10.2% 떨어졌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날 기준으로는 9% 하락했다. 반면 달러화 대비 중국 위안화 가치는 올해만 3.7%, 지난 1년간 9.5% 올랐다. 트럼프의 발언과 반대로 위안화는 미 달러화에 크게 강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다.
루블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은 맞다. 다만 이는 최근 미국 정부가 대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한 뒤 환율 시장이 요동친 결과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 공격을 단행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공동 군사 대응을 촉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고 있어 추가 경제 제재에 대한 우려가 루블화 자산 투매를 부추겼다. 루블화는 단기적인 급락 현상을 극복한 뒤 다시 안정을 찾고 있다.
트럼프가 무리하게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한 데에는 오는 19~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20일부터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봄철 연차총회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벤트를 앞두고 환율전쟁을 암시하는 신호를 보내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는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얻고자 전면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식 협상 전술의 연장선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과 환율전쟁 칼을 번갈아 뽑아 들고 있다고 풀이했다. 트럼프가 중국을 향해 처음으로 뽑았던 칼은 환율 문제였다. 그는 공화당 경선에 나오기 전인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기명 칼럼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되는 첫날, 미 재무부를 통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취임 첫 100일 안에 재무장관에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지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그는 중국을 환율조작국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중국과는 새롭게 무역전쟁을 펼쳤다. 이날 트윗은 다시 환율전쟁으로 돌아갈 기미를 내비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이달 초 취임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입장과도 대치돼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만 해도 “달러가 너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반면 커들로 위원장은 강달러를 꾸준히 지지하는 인사다. 그는 지난해 한 기고문에서 “1970~2000년대를 보면 달러화 약세는 높은 인플레이션율, 높은 기준금리 등과 관련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투자자들은 자금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분석했다.
한편 달러화 가치 하락의 주범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티크 저크스 애널리스트는 “달러화 가치는 하락하고, 유로화 가치는 오르고 있는 데 이 같은 현상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며 “그 단어는 ‘트럼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