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위니 만델라 여사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이날 사망했다. 만델라 가족 대변인인 빅터 달미니는 “만델라 여사가 이날 오전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만델라 여사는 만델라와 38년간 결혼생활을 이어갔으며 특히 만델라가 1963년부터 27년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뒷바라지를 했다. 만델라 여사 자신도 백인 정권으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 반 아파르트헤이트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말년에는 절도와 은행대출 관련 사기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굴곡이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이가 만델라 여사를 ‘남아공의 국모’로 추앙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백인 정권의 지배가 끝난 1994년 넬슨 만델라는 화해와 용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만델라 여사는 백인들에 대한 흑인의 분노를 대변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1996년 만델라와 이혼한 것은 단지 이들의 결혼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물론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심했음을 의미한다고 FT는 설명했다.
위니 만델라는 22세에 변호사이자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가인 만델라와 만났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만델라는 결혼해 세 자녀를 뒀지만 위니 만델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듬해 두 사람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뒀다.
결혼생활 대부분을 남편 옥바라지를 하면서 지냈지만 정작 만델라가 1994년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에 취임했을 무렵 별거했다. 그러나 만델라는 위니에게 예술·문화·과학기술부 부장관을 맡겼다. 부패 혐의가 불거지면서 위니 만델라는 11개월 만에 사임했다.
위니 만델라는 2003년 장례식기금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혼 후에도 만델라와 계속 연락했으며 2013년 그가 타계했을 때에도 임종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