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지주사 대신 '지배회사' 방식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한다. 이 과정에서 납부해야할 세금만 1조 원이 넘는다. 대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정의선 부회장 체제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8일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 부자가 납부하게될 세금만 무려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전반에 걸쳐 만연한 세금 회피나 절감 대신 정당하고 합당한 세금을 납부해 지배구조 개편과 정의선 부회장 체제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정공법'으로 해석된다.
그룹 측은 "대주주의 준법 의지와 투명성, 그리고 주주친화 경영이 강조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편법 승계 대신 사회적 정당성 및 신뢰 확보 차원 = 현대차그룹은 이날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선진화 출자구조 구축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현대차그룹 대주주가 순환출자고리 대신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체제 구축이다. 모비스 및 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등 사업구조 개편이 완료되더라도 기존 4개의 순환출자고리는 유지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7월 말 이후 변경 상장이 완료되는 시점에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하고 있는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사실상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그 정점에 정 회장 부자가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주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대주주가 합병 후 현대글로비스 주식 처분 등을 통해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 처분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전례가 없는 규모의 양도소득세를 납부하게 된다.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세금만 1조 원 넘어 = 올해부터 대주주 대상 과세표준이 3억 원 이상인 경우, 양도세율이 주식을 매각해 생긴 소득의 22%에서 27.5%(주민세 포함)로 상향 조정된다.
이를 감안하면 현대차그룹 측은 양도세 규모가 해당 시점의 주식 가격, 매각 주식수에 따라 다르게 계산되겠지만, 최소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연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주식 양도소득세 규모가 약 2조~3조(2016년 개인 기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두 대주주가 낼 세금의 규모만 사실상 절반에 가까울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이 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정공법' 카드를 뽑아 든 데에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대주주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주주의 이러한 과감한 결정은 결국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실(失)보다는 득(得)이 더 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왜 지주사 아닌 '지배회사' 체제로 가나 =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출자구조 재편과 관련 현대차그룹이 일부 계열사의 투자 부분만을 따로 분리해 지주사를 만들 것으로 관측했다.
이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지주사에 현물출자 함으로써 그룹 전체 경영권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대주주가 바로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대주주가 초기 부담을 줄이면서 지배구도를 개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대주주가 세금 없이 회사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판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현물출자 방식을 취해 주주들과 시장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재편 과정은 대주주가 지분거래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납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방식과 다르다. 현물출자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대신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 체제로 구조 개편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이 시장에서 예측했던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경우, 대주주가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지주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대주주는 최상위 회사 지분율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대규모 세금을 내고 사회적 명분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고 경영층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적법하고 정당한 지배구조 개편 방식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이번 개편 안이 사회적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주주들과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