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22일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대구의 작은 상점으로 시작한 삼성은 일제침략과 한국전쟁을 거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에서 수년째 전 세계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삼성 계열사들의 시가총액은 유가증권시장의 30%를 웃돈다. 임직원 수는 창업 때 40명에서 지금은 약 50만명으로 늘었다.
성대한 잔치라도 벌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잔치는 고사하고 이보다 더 우울할 수가 없다. 총수의 메시지도 없이, 사내 게시판에 그동안의 역사를 보여주는 80개의 사진과 영상물이 공개된 게 전부다.
이건희 회장이 오랫동안 와병 중이고, 최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일선 복귀도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집행유예에 대한 비난 여론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로 의심 받는 다스의 소송비 대납,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등 상황이 엄중한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삼성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된 유권해석을 2년 만에 변경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SDI가 팔아야 할 삼성물산 주식은 500만 주에서 904만 주로 늘었다. 금융위원회 역시 삼성을 겨냥해 차명재산에 대한 차등 과세를 언급했다.
국회에선 사실상 삼성을 타깃으로 한 입법 추진이 끊이질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남은 가운데,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사임도 요구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삼성 때리기’가 경쟁하듯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전방위적인 공격에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러니 무슨 일을 해도 그 정당성을 의심받는다. 실제로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은 창립 80주년을 맞아 일정 기간 사회봉사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삼성 측은 이를 공식화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까닭이다. 삼성 한 관계자는 “특별한 때만 봉사활동을 한 게 아니라 삼성 계열사들은 그동안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해 왔다”며 “좋은 일도 쉬쉬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한 삼성전자를 비롯해 지난해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 성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았으나 올 들어 여건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잇단 검찰 수사와 미국·중국의 통상 압력 등 대내외 악재가 이어지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