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3월은 정확하게 풀리는 계절이다. 우리말에는 ‘풀린다’라는 게 있다. 운(運)이 풀리고 앞날이 풀리고 관계가 풀린다고 말한다. 온갖 매듭으로 괴로운 나날을 돌아서 “그 사람 이제 풀리는 모양이야”라고 하면 가장 활짝 웃을 일이다.
천주교에는 ‘매듭을 푸는 성모님’이 계신다. 교황님도 이 매듭 푸시는 성모님 앞에서 간곡히 기도하셨다. 내 책상 앞에도 매듭 푸시는 성모님이 계신다. 일이 꼬일 때마다 이 성모님을 부여잡고 호소하기도 한다. 매듭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삶의 매듭은 원하지 않는데도 여기저기 꼬여서 우리를 괴롭히곤 하는 것이다.
딱히 불행해서가 아니라 삶이란 자기 안의 매듭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바로 자기 삶의 역사가 된다. 잘 안 풀린다고 마구잡이로 뜯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잘 다루고 기도하듯 살살 풀어가는 인내로 자기를 낮추며 풀어 가야 겨우 풀리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다. 성질대로 하면 확 뜯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인가. 이래저래 삶이란 달래듯 겸허히 사는 것이 정답인 모양이다.
그래서 풀리는 3월은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나무들에게는 푸른 기미가 보이지만 겨울이라 해도 봄이라 우겨도 무방한 3월이다. 그래서 자신이 봄으로 혹은 겨울로 만들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그런 선택의 계절이 3월이 아닌가 한다.
옷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 패션 스타일은 ‘새 옷인 듯 새 옷 아닌 스타일’, ‘멋 냈지만 멋 내지 않은 스타일’이라고 한다. 요상한 유행이기는 하지만 매력도 있다. 완전 유행에 따르는 것이 아닌 ‘나’가 스며들 여지가 있다. 몇 년 지난 옷에 새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을 레이스 리프트 현상 혹은 패션 모디슈머라고 부른다고 한다.
불황 탓에 부족한 패션분야에 창작력을 채우는 소비자를 말하는데 매력은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여백이다. 내 옷에, 내 집에 내 아이디어가 스미면 그게 예술의 기초가 된다. 옷도 집 안 꾸미기도 완전제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재미가 덜하다. 며칠 전 색동 버선 한 짝을 사다가 벽에 걸어두고 장미 한 송이를 꽂았는데 예쁘다. 그 주변도 살아난다. 집도 취미 동산이다.
나는 백화점을 잘 다니지 않아 거리 패션에서 즉흥 구매를 잘 하는 편인데 실수가 따르지만 요즘 이것저것 꺼내어 나름으로 새로움을 창출할 수 있어 다행이다. 너무 비싸거나 브랜드가 정확한 것은 손댈 수가 없지만 내 옷들은 변형하는 데 마음이 편하다.
요즘 TV는 보는 것으로 지친다. 책에 집중이 안 될 때 묵은 옷을 꺼내어 새로움을 더하기도 하고 집 안에 새로움을 더하기도 한다. 봄 아닌가. 자꾸만 처지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봄의 시작이다. 그렇게 변화를 주는 창의성의 3월에 멋도 내고 삶의 의미와 기쁨을 더해야 선뜻 봄이 만져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나라도, 나 자신도 풀려야 할 것들이 많은 3월의 시작이다. 풀려라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