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설 연휴 기간에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 간호사의 '태움' 문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박 모(27·여)씨는 15일 오전 10시40분께 송파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9월 해당 병원에 입사해 중환자실에 근무하던 신입간호사 박 씨는 자택 인근을 배회하던 중 다른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관측된다.
박 씨의 남자친구는 간호사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여자친구가 '태움'이라는 괴롭힘을 당해 출근하기 무섭다고 호소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약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나타낸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병원 현장에서 신규 간호사의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무섭게 교육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간호사 내 위계 질서를 내세워 '직장 괴롭힘'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씨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숨지기 전날 메시지로 '큰일 났다. 무섭다'고 불안해했다"며 "2년 동안 만나면서 그렇게 무서워하던 건 처음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는 아니다"라며 "간호사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태움'이라는 게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고 성적도 우수해 갑자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 경찰은 박 씨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메시지와 메모 등을 확보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간호사의 '태움' 문화에 대한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지난해 한림대 성심병원 사태도 태움 문화의 일종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당시 병원 재단 행사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은 특정 부위가 노출된 옷을 입고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았다.
2005~2006년에는 전남대학교 병원에 다니던 간호사 2명이 자살했다. 한 간호사는 자신의 팔에 치명적인 약물을 주사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 더욱 충격을 안겼다. 유족들은 "선배 간호사에게 폭행과 폭언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힘들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며 '태움' 문화에 대해 토로했다.
네티즌은 "간호사 일이 힘들어서 '태움' 문화가 생겼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 근무환경 개선돼도 태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군대 가혹행위랑 똑같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더니", "경각심 갖기 위해 군기를 잡는다? 폭력 정당화 수단일 뿐", "이번 계기로 간호사 악습 없어지길", "간호사 업무만도 힘들 텐데 태움 문화가 더 사람 잡네", "간호사는 동료애가 없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