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법관의 독립, 대법원을 주시한다

입력 2018-02-09 14:12 수정 2018-07-0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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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로 다른 음색을 내는 악기들이 각기 다른 성부(聲部)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화음(和音)이 중요하다. 정확한 화음을 내려면 음이 맞아야 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트럼펫과 트럼본이 각기 자신의 음이 맞으니 자기를 따르라고 한다면, 오케스트라는 화음은커녕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오보에의 에이(A) 음에 모든 악기가 음을 맞춘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우리 사회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사법부는 오보에에 해당한다.

지난달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2015년 2월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뒤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에서 법원행정처로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당시 청와대가 원 전 원장 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심리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추가조사위원회의 발표 직후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은 전원 공동 명의로 청와대의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외부 기관의 영향을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먼저 이 재판에 관여하지 않은 6명의 대법관이 공동 명의 입장 발표에 참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나아가 청와대가 선거의 공정성과 당선의 정당성을 따지는 재판에 개입을 시도했거나 최소한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재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발표로 성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권력분립을 흔드는 행위는 형법의 논의를 빌리자면, 침해범(侵害犯)이 아니라 위험범(危險犯)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독립은 권력의 개입으로 실제 재판의 절차나 결과가 왜곡돼야만 해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럴 위험만 있어도 해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대법관들의 공동 입장 발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흩어져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재판 결과에 따라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권력이 사법부에 압박이든 간청이든 그 어떤 접촉이라도 했다면 삼권분립 원칙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권력분립과 선거제도의 공정성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가 나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것이다. 소란스럽지 않다면 독재국가이거나 전체주의일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에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작게는 가정에서, 크게는 국가에서도 싸움은 늘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있다. 갈등의 해소 방법과 절차가 합리적이라면, 즉 건강한 사법이 존재한다면, 어떤 소란과 혼란이 있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 갈등은 발전을 위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가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 의해 흔들리는 것은 엄중한 사태다.

지난 2년간 검찰과 특검에 쏟아진 국민의 눈과 귀는 이제 법원을 향해 있고, 올 하반기에는 그중에서도 대법원으로 쏠릴 것이다. 2016년 하반기에서 2017년 상반기까지 국민들은 헌법재판관들의 이름을 줄줄 외울 정도였는데, 조만간 대법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입법과 행정이 망하는 것은 사법이 망하는 것에 비하면 조금 망한 것이다. 구부러진 잣대, 작은 것은 잘 재지만 큰 것 앞에 서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리는 저울이 있는 한 그 사회에 희망은 없다. 첼로가 음을 틀리거나 바순이 혼자 큰 소리를 내더라도 지휘자가 지휘 과정에서 지적하여 고쳐주면 연주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보에가 제 음을 내지 못하면, 오케스트라와 연주는 망가지게 된다. 작지만 한자리에서 에이 음을 똑바로 내는 오보에만 있다면 절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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