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영웅본색, 타인의 얼굴

입력 2018-02-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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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룡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원본부장

‘영웅본색’이 개봉했다. 극 중 소마 역인 저우룬파(周潤發)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청년들은 너 나 없이 롱코트를 입고 성냥을 씹었다. 소마는 배신당한 친구 송자호의 복수를 하다 한쪽 다리를 잃고 조직 건물의 주차관리자가 됐다. 출소한 송자호는 택시 운전을 하다 우연히 소마를 발견하고 주차장 구석에서 찬밥을 씹는 그와 재회한다. 소마는 배신자가 있었다며 마지막 ‘한탕’을 제안하지만, 송자호는 경찰인 동생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 거절한다. 배신자가 보낸 킬러가 아버지를 살해해 동생은 이미 그를 증오하고 있다. “삼년을 기다렸다!”라고 절규하며 홀로 복수에 나선 소마는 배신자에게 끌려가 코뼈가 부러질 만큼 무참하게 폭행당한다. 1987년이었다.

가난했지만 즐거운 기억이 많은 시절이다. 3저 호황 덕분인지 올림픽을 앞둬서인지 당시엔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모른다. 죽마고우(竹馬故友) 다섯이 항상 어울려 놀았다. 같은 해 개봉한 ‘천녀유혼’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친구 세 명이 고등학생 형들한테 이유 없이 두들겨 맞았다. 친구 하나는 코뼈까지 부러졌는데 적절히 조치하지 못해 여태 흔적이 남았다. 개성 넘치는 인상을 갖게 된 건 아이러니다.

코뼈가 부러진 친구는 바다 같은 인품을 가졌다. 그날 이후 녀석은 부정의에 맞닥뜨렸을 때 당장 도전할지, 충분히 힘을 기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묻곤 했다. 부당하게 가혹한 선생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가 따귀도 맞았다. 꽤 높은 서열의 운동권이 된 녀석이 분신을 예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대 행정반에 주저앉아 오열한 기억이 있다. 다행히 살아서 가끔 산에 함께 가고 술도 마신다.

30년이 지났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졌다. 흙수저 청년들은 ‘N포 세대’라 자조한다. 세 모녀가 월세를 담은 봉투를 남긴 채 자살했다. 가족을 죽인 독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26년을 기다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2012년에 개봉했고, 2014년에는 대부분 어린 학생인 수백 명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생방송 되는 화면 속에서 죽어 갔다. 혹한의 길바닥에 누운 노숙자들이 소주병을 안고 잠든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에 육박해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코뼈가 부러졌다. 비중격까지 무너진 복합골절이다. 생각만큼 아프진 않은데 변형될 수 있고, 코 기능도 떨어질 수 있다기에 수술을 예약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모든 가능성의 불가능성으로서 죽음을 상정하고, 환대의 정신에 입각한 인간 회복의 윤리학을 설파했다. 입구는 타인의 얼굴이다. 부러진 코는 얼굴을 바꾸지만, 그 안의 인간을 없애지는 못한다. 1987년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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