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파’의 대명사였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매파’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 대열에 합류한다.
1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는 이날 공개한 작년 12월 회의록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해 펼쳤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예상보다 빠르게 축소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일본은행(BOJ)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긴축을 가속화하거나 기존의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축소하려는 가운데 ECB도 이에 합류한 것이다.
ECB는 이날 회의록에서 “경제가 계속 확장되면 올해 초 통화정책에 대한 견해나 선제 안내 관련 문구가 재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10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ECB가 이후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피하려면 점진적으로 통화정책 기조를 변경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9월까지인 채권 매입 프로그램, 즉 양적완화의 종료 가능성을 ECB 회의록이 높였다며 기준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논의도 촉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CB는 “올해 글로벌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이 완화했다”며 “무역전쟁에 대한 불안은 이전보다 줄었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보이고 있지만 첫 번째 관문도 통과했다”고 진단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제니퍼 맥커운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ECB의 정책 재논의는 우리가 가정한 것보다 빠르다”며 “당초 우리는 9월 이후에도 ECB가 채권 매입 규모를 연말까지 점진적으로 줄이는 등 양적완화를 지속할 것으로 봤지만 ECB는 이 프로그램의 종료를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ECB는 이르면 오는 1월 25일 회의에서 양적완화와 관련해 확대나 축소 등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견해를 아예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유로화의 최근 상승에 금리인상에 대한 선제 안내가 강화될지는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FT는 BOJ가 초장기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한다고 밝힌 지 수일 만에 ECB의 회의록이 나왔다며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긴축에 대해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풀이했다.
ECB 회의록이 ‘매파’ 경향을 보였다는 투자자들의 해석에 유로화 가치는 이날 올랐다. 유로·달러 환율은 전날의 1.19달러 대에서 1.20달러 선으로 뛰었다. 영국 파운드화와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각각 0.5% 상승했다.
독일 국채인 분트(Bund) 10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5bp(bp=0.01%포인트) 오른 0.53%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범유럽 증시 벤치마크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뉴욕증시와 영국 런던증시의 강세에도 ECB 긴축에 대한 불안으로 0.3% 하락한 397.25로 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