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한 계열사 재무팀은 지난해 말 가상화폐 투자를 위한 기초 자료 분석에 돌입했다. 비트코인, 리플 등 다양한 가상화폐의 가치와 장래성, 투자 수익 분석 등 몇 주에 걸쳐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결국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 투자를 보류했다. 또 다른 대기업 역시 가상화폐 투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가 막판에 투자를 진행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초 100만 원가량 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25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점점 거세지면서 대기업들 역시 투자 검토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제 투자에 나선 곳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안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도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대기업들인데, 정부가 현재 투기로 보고 있는 가상화폐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나마 투자를 검토하는 것은 여유자금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주식투자보다 가상화폐 투자가 더 효율적이라 판단하면 투자를 단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론적인 얘기일 뿐, 실제 투자에는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주식 투자를 잘하기로 유명한 KCC 역시 가상화폐 직접투자에는 선을 긋고 있다. KCC 관계자는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지금 가상화폐 투자에 돈을 쓸 기업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만 가상화폐 기반기술인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거래소 투자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 중 전 영역을 아우르는 기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SDS는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Nexledger)’를 지난해 초 삼성카드에 처음으로 상용화한 데 이어 해운물류까지 영역을 넓히며 블록체인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제조기업인 삼성SDI의 전자계약시스템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정대선 현대BS&C 사장이 지난해 설립한 ‘현대페이’도 대표적인 블록체인 선도 기업이다. 김병철 현대페이 대표는 “Hdac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미래 4차 산업의 핵심기술분야를 이끌어 나가는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특히 현대페이는 지난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ABA(아프리카 블록체인 협회)와 ‘아프리카 유니온 코인’ 및 관련 서비스 사업제휴 MOU를 체결했다. ‘아프리카 유니온 코인’을 통해 아프리카 각국의 복잡한 화폐시장을 가상화폐 하나로 통합해 지불ㆍ결제ㆍ송금을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넥슨 지주회사인 엔엑스씨(NXC)는 지난해 9월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의 지분 65.19%를 912억5000만원에 인수해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