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가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인텔이 사상 초유의 중앙처리장치(CPU) 보안 결함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크르자니크 CEO가 이 사실이 들통나기 전 자신이 보유했던 자사주를 대량으로 매각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크르자니크 CEO는 지난해 인텔이 자사 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 보유주 절반을 팔아치웠다고 4일(현지시간) CNN방송이 보도했다. 크르자니크는 인텔 주가가 지난해 정점에 도달하기 3일 전인 같은 해 10월 30일 24만5000주를 11월 29일까지 매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지난해 꾸준히 주식을 매각해 최종적으로는 25만 주만 보유하게 됐다. 이는 CEO로서 그가 반드시 보유해야 할 최소 물량이었다. 크르자니크는 지난해 무려 21차례나 주식을 매각했으며 금액상으로는 5000만 달러(약 532억 원)에 달해 그가 인텔 CEO에 재직한 이후 가장 많았다고 CNN은 지적했다.
CEO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매각한다. 여기에는 사업 다각화와 유동성 확보, 대형 인수를 위한 자금조달 등의 목적이 포함된다. 그러나 크르자니크는 매각 규모도 엄청나고 현재 주식 보유량도 CEO 의무를 지키는 선에 그쳐 적절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인텔은 “크르자니크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주식 매각은 이번 보안 이슈와는 관련이 없다”며 “그는 사전에 계획된 매각 일정에 따라 자동으로 지분을 매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안 결함이 대중에 공개되면서 인텔 주가는 이틀간 6% 이상 급락했다.
샌포드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인텔 담당 애널리스트는 “그는 엔지니어이며 수학을 할 수 있다”며 “인텔의 해명은 보안 이슈와 상관없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내가 취급했던 모든 회사에서 최근 수년간 CEO가 이렇게 대규모로 보유주를 매각한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크르자니크는 2016년에도 주식을 18차례 매각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매각도 지난해 말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으며 2016년 말 크르자니크의 주식 보유분은 연초보다 오히려 1만8000주 많았다.
CNN은 이래저래 지난해 11월 매각은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파문은 실적 침체 늪에서 인텔이 헤어나오려는 와중에 일어나 더욱 치명적이다. 사실 인텔 주가는 지난해 여름 이후 27% 올랐으며 애널리스트들 중 절반 이상이 인텔 투자의견을 ‘매수’로 제시했다. 애널리스트 중 부정적인 의견을 낸 사람은 8명 가운데 1명꼴에 불과했다. 크르자니크도 “지난해는 기록적인 해”라고 말할 정도로 인텔 자체에서도 고무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크르자니크 자신이 도덕적 해이 논란을 촉발하면서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특히 시장은 크르자니크가 대량으로 주식을 매각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인텔은 전날에야 자사 칩에 보안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공표했으나 이를 인지한 시점은 지난해 6월이었다. 6개월 이상이나 이 사실을 꽁꽁 감춘 셈이다. CPU 게이트가 인텔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인텔 대변인은 “우리는 보안 결함을 고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를 이미 밟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크르자니크의 주식 대량 매각은 CEO들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 즉 잘못된 이유로 자신의 이름이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긴 셈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크르자니크에 대해 내부자 거래 금지 위반 혐의로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