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근로시간·법인세율…
정책 이행하면 100兆 추가 소요
기존 법률 뒤집고, 규제 쌓이고
경제단체는 적폐세력으로 낙인
“이보다 나쁠 순 없다” 고충 토로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재계 관계자들이 입 모아 얘기하는 올해 체감 경영 온도다. 정부와 사법부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확대, 법인세율 인상 등 개혁적 경제 정책과 제도를 몰아붙이면서 재계 곳곳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온다.
현실적 지원이나 대책은 없이 ‘많이 고용하고 임금도 올리면서 안정적 직장을 보장해주고 근로시간도 줄이라’는 식의 요구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근은 없이 채찍질만 가하는 격”이라며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기업을 압박해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현 정부나 사법부가 요구하는 주요 개혁을 모두 수행하려면 한해 최소 70조 원대, 최대 100조 원이 넘는 비용이 추가로 들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ㆍ경영 관련 단체, 연구기관 등의 분석을 취합한 수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당장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 전체 인건비가 15조2000억 원 더 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 한국경제원에 따르면 1주 최장 근로시간 68→52시간 단축 역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기업이 추가로 연간 12조3000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여야 합의가 ‘휴일 근로수당 중복 가산’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질 경우, 실제 부담이 이보다 수조원 줄어들 가능성은 남아 있다.
기아차 1심 선고와 마찬가지로 정기 상여금 등이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동시에 ‘신의 성실 원칙’ 배제로 ‘소급 지급’ 명령까지 이어질 경우 기업은 최대 38조5509억 원(경총 추산)의 추가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과거 3년간 임금 소급분 24조8000억 원, 통상임금과 연동해 늘어나는 각종 수당(초과근로 수당 등)과 간접노동비용(퇴직금 등) 증가분 1년치 8조8000억 여 원을 합한 것이다.
법인세 인상에 따른 부담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올해부터 상위 대기업들의 법인세 부담도 2조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법인세에 ‘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고 최고세율 25%를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과세표준 3000억 원 이상 기업은 2016년 기준 77개로, 정부 추산에 따르면 새 법인세 제도에 따라 내년에 2조3000억 원 정도가 더 걷힐 전망이다. 여기에 일부 감면받았던 연구ㆍ개발(R&D) 비용과 설비 투자액에 대한 세액공제가 줄어들면 실질적 법인세 추가 부담은 약 2조8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더구나 여당 주도로 국회에 발의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돼 지주회사 부채비율 규제(200%→100%)나 자회사 주식보유기준이 강화(40%→50%)될 경우, 대기업 지주회사는 계열사 지분 등을 추가로 확보하는데 수십조 원을 들여야 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 관세율이 조정되거나(한국경제연구원 5년간 최대 19조 원 수출 손실 예상),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편, 탄소배출권 거래제 유상할당 등까지 실행되면 기업들의 연간 추가 비용 부담이 1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의 요구를 모두 실천하려면, 기존 임금·근로 체계를 포함한 경영 시스템 전반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이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할 사안”이라며 “무조건 압박한다고 당장 기업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공정위가 기존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면서 기업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정 2년 만에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 집행 가이드라인’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정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변경되면서 당장 주식을 추가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삼성은 물론, 롯데 등 향후 적용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도 애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예측 가능성을 정부가 어지럽혀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정부의 결정이 또 뒤집히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결정한 것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또 뒤집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재계의 우려와 요청을 전달해야 할 경총, 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이 ‘적폐 세력’으로 찍혀 현 정부의 대화 파트너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소통에 나서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기업 관계자는 “경총이나 전경련 모두 성격이나 법적으로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조직한 민간 법인”이라며 “민간단체ㆍ법인에 대해 정부가 노골적으로 질타하거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이 정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