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는 아버지의 단골 멘트였다. 아버지 말씀의 요지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 책이나 신문을 보는 등 유의미한 활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부지런함’은 최고의 미덕이자, 성공을 위한 불변의 진리였다.
그러나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아버지의 조언은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일어나도 졸기 일쑤였다.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무조건 벌레를 많이 잡나요?”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버지에게 나의 주장을 관철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아침에 나를 깨우지 않았다. 불변의 진리가 항상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라고 판단하셨으리라.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완고했지만,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새를 까맣게 잊은, 어느 날이었다. 출입처이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A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나의 학창 시절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석간신문 기자인 나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했다. A사 관계자에게 “이렇게 빨리 출근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예전부터 원래 그랬다”고 답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 도장을 찍은 A사 직원들 일부는 로비로 내려와 조용히 구석진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구석의 소파에서 모자란 잠을 청한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일찍만 일어난다고 모든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일찍 일어나 졸면서 허탕을 치는 것보단, 더 자고 체력을 비축해 필요할 때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잠은 집에서, 일은 회사에서 하는 게 좋다.
재계 1위 삼성은 2015년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했다. 필요에 따라 늦게 출근하는 날에는 그만큼 더 일하라고 한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책임감을 요구한다. A사는 ‘원래부터 그랬기 때문에’ 일찍 오라고 한다. 재계 라이벌이었던 삼성과 A사는 그렇게 해서 격차가 벌어진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