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3일 후. 거목의 그림자는 깊어졌다. 그의 비서실장은 하나은행장으로 추대됐다. 행장 후보군 하마평조차 없었던 그야말로 깜짝 인사였다. 또 회장과 행장에 이어 하나금융 권력 서열 3위 사장 자리에는 당시 최흥식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이 내정됐다. 그는 연세대 경영대 교수를 거쳐 2010년부터 하나금융과 인연을 맺었다. 하나금융 수뇌부가 김 전 회장의 비서실장에다, 그가 직접 영입한 측근으로 채워졌다.
이어 3년 후. 2015년 하나고등학교 비리 의혹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한다. 신입생 선발 특혜 의혹·학원 폭력·성추행 의혹 등 당시 서울시의회는 ‘하나고 특혜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됐다. 하나학원이 하나금융의 자금 지원으로 설립된 학교법인인 만큼 각종 특혜 시비는 하나금융의 이미지 훼손으로 직결됐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하나학원 설립 인가와 함께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2년 재임을 통해 2016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시 최흥식 하나금융 사장은 2011년부터 4년 넘게 이 학원 이사로 재직했다. 하나학원 이사·감사 상당수는 ‘김승유 라인’으로 분류된 인물이었다. 김정태 현 회장이 본격적인 친정 체제를 구축한 2013년 전후로 그룹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하나학원 이사로 흡수됐다. 김 전 회장과 가까운 인물들이 대거 학원 이사진에 포진해 있는 상황, 그 자체가 ‘특혜 논란의 시작’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올해 9월 최흥식 전 사장은 “우리말에 참외 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라고 했다”라는 속담을 건네며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올랐다. 현 정부가 ‘적폐 청산’을 제1호 국정과제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최흥식 카드’는 깜짝 인사였다. 인사권자가 ‘왜 최 원장을 임명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 한, 현 정부의 ‘숨은 코드 찾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 때문일까. “오얏나무(자두나무의 고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최 원장 취임 3개월 후. 하나금융이 김정태 회장 연임 여부를 놓고 시끌시끌하다. 과거 하나금융과 밀접한 인연을 맺은 그가 ‘셀프 연임’이라고 지적하자 문제가 더욱 확산됐다. 결국 대립각을 세우던 하나금융이 김정태 회장을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제외키로 했다. 경영승계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최 원장의 지적을 반영한 것. 최 원장 스스로도 역공을 받을 수 있는 하나금융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하고, 뜯어고치는 데 일조한 셈이 됐다.
최 원장은 “내가 그렇게 얄팍해 보이나”라는 말로 이번 문제에서 김 전 회장과의 연관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작동하는 금감원 조직의 속성을 견주어 보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작금의 행정지도는 ‘보이지 않는 손’이 동력(動力)으로 주목된다. 최 원장은 “(김정태)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자기 보호막을 쳤지만, ‘오얏나무 아래 갓끈 고쳐 맨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