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올해 독립 100주년을 맞는다. 오랜 기간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한 후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1인당 GDP가 4만 달러인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로 성장했다. 국토의 72%가 숲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오래전부터 목재를 산업의 원천으로 삼았으며, 화석연료보다는 수력 등 자연 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지어진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올킬루토(Olkiluoto) 인근에 지어진 온칼로(Onkalo) 폐기장은 이 나라 사람들의 후손에 대한 역사적 책임감을 실감나게 해주는 장소이다. 안전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간의 다툼의 문제라기보다는 후손에게 건강한 지구를 남겨줄 책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을 때 핀란드로 출장 갈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하기 위해 만났던 많은 핀란드 사람들은 대화의 서두에 항상 한국과 핀란드의 유사성을 거론하곤 했다. 오랜 기간 강력한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열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세계 제1의 정보통신(ICT) 산업을 일구어낸 저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고 있을 때 핀란드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전쟁 배상금을 모두 갚는 등 하나 된 모습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이자 지식 기반 경제를 갖췄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도 이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핀란드보다 10배나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만의 특성이 있지만 열강의 테두리 안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핀란드의 경험을 벤치마크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지식 기반형 경제로의 전환이고, 둘째는 사회통합이다. 대량생산과 규격화된 소비로 대표되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기술과 디자인, 창의력, 솜씨가 강조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된다.
또한 우리 사회 밑바닥에 스며들어 있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걷어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보와 관용을 우리 시대의 화두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핀란드의 은방울꽃과 우리의 무궁화에는 두 나라 국민들의 바닥에 흐르는 정서가 담겨 있다. 한국인의 상징이 은근과 끈기로 이루어내는 섬세한 아름다움이라면, 핀란드인은 겸손과 과묵함 속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그래서 행운을 가져오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는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The Future is Finnish)”라고 핀란드를 높이 평가한다. 양보와 대타협으로 사회 통합을 이루어냄으로써 우리의 저력이 다시 한번 발휘되어 “이제는 미래가 한반도에 있다”라는 평가를 듣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