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대안은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실효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섀도보팅(그림자 투표)’ 제도 폐지가 눈앞에 다가왔다. 시행된 지 26년 만이다. 폐지는 이미 2014년에 결정됐지만, 적지 않을 후폭풍 때문에 3년간 유예한 제도이기도 하다. 섀도보팅은 주주총회에 불참한 주주의 의결권을 찬반 비율대로 대리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주총의 손쉬운 정족수 확보를 통해 경영진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섀도보팅 제도 일몰을 놓고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야권 위원들의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상장기업의 의견을 반영해 주총 의사 정족수를 발생주식 총수의 5분의 1, 의결 정족수를 참석 주식수의 과반수로 낮추는 방안을 담은 상법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유예 기간 기업들이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평행선을 그렸다. 다시 유예한다고 해도 상장기업들이 준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제도 폐지로 주총을 열지 못해 감사 선임에 실패하면, 관리종목 지정은 물론 상장폐지까지 될 수 있는 만큼 상장기업들은 걱정일 수밖에 없다. 현행법상 주총은 참석 주식수와 관계없이 열 수 있지만, 보통결의의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출석과 출석 주식수 과반 이상 찬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주총 출석 주식수가 4분의 1을 넘지 못하면 기업들이 감사 선임과 감사위원회 구성을 할 수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코스피 상장사 4분의 1이, 코스닥은 3분의 1 이상이 섀도보팅을 요청하는 게 현실이다. 상장기업들은 이 요건의 완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일단 섀도보팅부터 폐지하고,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같은 문제는 규정을 보완해 예외로 해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여기에 주총 참석을 독려하거나 주주에게 안내사항을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제도 일몰은 당장 다음 달인데,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섀도보팅 폐지로 인한 ‘주총 대란’을 막을 수 없다고 상장기업들이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에서 거론한 대로 대안은 실효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거론하는 안은 아직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걸림돌 중 하나는 주주 정보공개 여부다. 출석 주식수를 늘리기 위해 상장사가 주주 참석을 독려하거나 의결권 위임을 권유하려면 당연히 주주들의 정보가 필요하다. 인력도 적은 중소기업들이 일일이 수많은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의사를 물어야 하는 문제를 넘어, 현재 기업들은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보호 문제로 주주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태다.
전자투표제의 실효성도 넘어야 할 산이다. 유예기간 3년간 섀도보팅을 사용한 상당수 상장기업이 주총 성립을 위해 전자투표와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했지만, 대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활용률이 저조했다. 올해 3월 말 기준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 행사율은 각각 2.1%, 0.1%에 불과했다. 이는 소액주주의 상당수가 경영 참여보다는 단기 이익 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폐지부터 해놓고 방법을 찾는다면,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 현장의 어려움이 곪아 터져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된 뒤에야만, 부랴부랴 해결에 나선 과거를 또 반복해야 할까. 인력과 자본이 많은 대기업은 어찌 헤쳐 나간다고 치자. 하지만, 중소 상장기업들은 상황이 다르다. 불필요한 고충을 막는 현실적인 대안은 제도 폐지 전에 반드시 수립되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발행주식 총수의 3%를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가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3% 룰’ 등의 규정을 손보고, 일본처럼 의사 정족수 요건에 일부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안도 차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